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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Feb 19. 2024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마드리드: 티센가문의 컬렉션

티센 보르네미사 국립 미술관

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은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마드리드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붉은 건물과 야자수가 있는 정원에서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름도 낯설고 건물도 아담해 보여서 금방 보고 나올 수 있을 거라 방심했다. 한 가문에 의해서 수집된 컬렉션은 13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유럽의 미술사를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프라도와 레이나 소피아에서 볼 수 없었던 19세기 컬렉션이 너무나 훌륭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눈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철강과 석유, 군수 사업으로 부를 이룬 Thyssen 가문은 독일 출신으로 3대에 걸쳐서 기업과 미술품을 상속했다. 처음 시작은 August Thyssen (1842~1926)이 1905년경 로댕에게 7개의 조각품을 의뢰하면서 예술품 수집이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컬렉션을 이어받은 Heinrich Thyssen (1875-1947)은 헝가리 남작 딸과의 결혼으로 귀족 칭호를 얻으면서 Thyssen-Bornemisza로 성을 바꾸었다. 그는 13세기 고전미술부터 19세기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수집하였는데 카르파치오의 <기사의 초상>과 한스 홀바인의 <헨리 8세 초상화>를 컬렉션에 추가한다. 헨리 8세는 궁정 화가였던 Hans Holbein (1497-1543) 에게만 모델로 서줬다고 한다. 다른 화가들이 그린 헨리 8세의 모습은 홀바인의 그림을 보고 그린 거라서 의미가 약하고,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 그림은 몇 점 안 남아 있어서 아주 귀하다. 이 그림은 원래 스펜서 가문에서 소유했던 작품이었다. 1400년대부터 이어져온 스펜서 가문은 잘 알려진 대로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친정이다. 굉장한 부를 소유하고 있던 스펜서 가문은 19세기 후반에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며 여러 자산을 매각하게 된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스펜서는 상당한 가치가 있는 명작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중의 한 점인 <헨리 8세 초상화>를 1930년 당시에는 큰 금액인 £10,000에 팔았으나 1998년에는 약 5천만 파운드의 가치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왼쪽) 카르파치오 <기사의 초상, 1505>                                                (오른쪽) 홀바인 <헨리 8세의 초상, 1537>

3대째 상속자 Hans Thyssen-Bornemisza (1921-2002)는 20세기 현대 작품을 다양하게 수집했고, 친척들이 판매하려고 내놓은 미술품까지 사들이며 소장품의 규모를 늘려갔다. 스위스 루가노에 거주하며 자택에서 소장품을 전시하던 그는 스위스 정부에게 미술관 지원을 요청했으나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컬렉션에 눈독을 들이며 전시공간을 제안하였고, 미스 스페인 출신이었던 Hans 아내 Carmen의 설득으로 스페인에서 지원을 받기로 결정한다. 마드리드는 비야에르모사 궁을 리모델링하고, 1992년에 <티센 보르네미사>를 개관하게 된다. 스페인 정부는 티센의 컬렉션 가운데 775점을 3억 5천만 달러에 구입하여 전시하고, 일부는 카르멘에게 대여받아 전시하고 있다. 영향력이 큰 카르멘의 의견으로 미술관 내부를 연어색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좀 특이한 색상이긴 한데, 은근 그림들과 잘 어울린다.



3층으로 올라가면 14세기 초기 이탈리아 작품과 폴랑드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층별로 유럽 미술사뿐만 아니라 북미 회화까지 흐름을 느끼며 재밌게 볼 수 있다. 2층의 인상파 컬렉션은 기대 이상으로 다양하고 좋은 작품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1층에서는 20세기 현대 작품들까지 만나게 되며 탄탄한 컬렉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재정치와 내란으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까지 썼던 스페인은 반쪽짜리 컬렉션만 보유하며 체면을 구길 뻔했으나 티센-보르네미사 가문 덕분에 완벽한 컬렉션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티센에서 만나게 된 러시아 작가 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작품이다. 그의 추상작품은 볼 기회가 많았는데, 추상으로 변하기 전 단계의 작품이라니 낯설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독일의 바이에른으로 돌아온 그가 알프스 기슭에 있는 작은 마을 무르나우에 정착했을 때인 1908년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대담한 붓놀림과 강렬한 색상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야수파의 기법이 보이고, 관중의 모습에서는 점묘법의 사용이 눈에 뜨이는 매우 개성이 강한 그림이다. 이후 그의 그림은 급속하게 추상화로 변해간다.


왼쪽 <무르나우: 오버마르크트의 주택, 1908>                                         오른쪽 <뮌헨의 루트비히 교회, 1908>


마침 폴란드-프랑스 화가 Balthus (1908-2001)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어린 소녀들을 예쁘게 사랑스럽게 그리기도 했고, 어떤 그림에서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묘하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위험이 감지되며 갸우뚱하다 보면 다소 과한 표현으로 당황스럽기도 했다. 역시나 그는 어린 소녀를 에로틱하게 표현하여 소아성애 혐의를 받으며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를 예술로 봐야 하는 건지,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다소 혼란스러운 경계에 있는 작품들이 있었다.



마드리드는 역사가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고, 미술관도 알찬 매력 만점의 도시이다. 인근의 소도시들도 깊은 역사와 특유의 자연환경으로 어느 한 곳도 뺄 수가 없다. 마드리드에는 3대 미술관 이외에도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인 호야킨 소로야의 미술관도 추천한다. Joaquín Sorolla (1863-1923)는 스페인 화가 중에서 가장 온화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린 거 같다. 똑같이 어둡고 무거운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밝고 행복한 그림을 그려서 더 눈에 들어온다. 아래 그림들은 1909년 격동의 시대에 그린 그림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분명 어두움 속에서도 밝은 그림을 그린 인상파 그룹이 있었을 텐데, 다음번 마드리드 방문 때는 스페인의 인상파 그림을 살펴보고 싶다.


호야킨 소로야 <말의 목욕, 1909>   <해변산책, 1909>. 소로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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