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서 무슨 공부를 할까 (자녀교육)
딸이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빠르게 결정을 했다. 미술로 전공을 바꾸는 준비와 유학준비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뛰어들었다. 우리의 경험이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일단 고등학교 때 입시미술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기술적인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대신에 영어 점수는 충분했다. 우선 유학미술 전문학원 몇 군데를 방문해서 상담을 받았고, 성향에 맞는 곳으로 선택했다. 유학미술학원은 원장의 전문성으로 차별화되는 듯했다.
처음에는 뉴욕의 미술 대학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미술 준비를 하면서 런던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같은 전공 안에서도 어느 국가의 어느 학교로 진학할지에 따라서 포트폴리오를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뉴욕의 학교들만 방문해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뉴욕으로 진학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런던도 고려해 보라는 남편의 조언대로 런던을 방문해서 미술로 유명한 학교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 결과 런던으로 진학하기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아무래도 생활환경이 런던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바라보며 미술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큰 결정요인이 되었다.
우선 유학준비를 위한 미술학원을 다녀야만 하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유학 미술학원에서는 전공분야가 각기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강의를 신청해서 수강할 수 있다. 담당 선생님들이 해외 유학경험자들이라 어느 정도 수준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 학교가 잘 맞을지를 학생의 실력과 성향을 보면서 조언해 주신다. 그리고 진학을 원하는 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포트폴리오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학생과 토론하며 실력을 끌어내 주신다. 물론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짧은 준비 기간을 극복하고 합격률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술전문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 비해서 기술면에서는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외국 대학교에서는 기술력을 중요하게 보는 거 같지는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창의력과 가능성을 보는 듯했다. 문제는 합격하고 나서 대학에 진학한 이후가 더 어려운 거 같다. 미술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다양한 재료들을 접해보지 못한 점에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대학교 입학 합격 여부는 12월과 1월 중에 결과가 나왔고, 영국의 경우에는 10월 입학이라서 합격자 발표 후에 9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여유로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은 작가 선생님들의 스튜디오 몇 군데에 나가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진학 이후를 준비했다. 심지어는 목공소까지 찾아가서 나무 다루는 방법까지 배웠다. Fine Art의 범주가 무한대라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은 Art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작품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료를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이후에도 한국에 나오게 되면 털실, 원단등의 재료등을 준비해서 런던으로 가져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재료를 구하기가 더 쉽고 더 저렴했던 거 같다.
학부생활을 하면서는 고민도 많고 힘들어 보였다. 늘 토론수업이 병행되어서 본인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질문 세례를 받으며 작품 제작의도를 설명하고 방어를 해야 했다.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든 거야’라는 답은 있을 수 없고, 왜 그렇게 작업을 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나니, 작품을 제작할 때 그냥 기분대로 하는 거는 아닌 거 같았다. 기획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고 제작 과정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서, 토론 중에 있었던 논쟁으로 상처를 받았다는 푸념을 들어주기도 했다. 아니 내가 만들고 싶고 그리고 싶어서 그린거지, 그걸 왜 설명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게 교육이었나 보다. 학부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현대미술품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냥 작가고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한 거겠지? 내가 왜 이 어려운 현대 작품을 이해해야 해?’라고 생각했었는데, ‘분명 작가의 깊은 뜻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창의력 천재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면도 있었다. 그들에 비해서 너무 평범한 사고를 하는 게 문제였다. Fine Art 전공을 하는 학생 중에는 몸소 나체로 행위예술을 하며 작품이라고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한국의 유교 girl에게는 충격이 컸을 거다. 유현준 건축과 교수님 저서에서 읽은 대목이 강하게 와닿았다. 우리나라는 학교 건물이 군대, 교도소 건물과 같은 구조라서 창의력을 키우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개인의 성향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여러 가지 사회 구조가 창의력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나름 창의력이 있었고 손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학부 과정 중에 만들어 내는 결과물들이 놀라웠다. 부모로서는 네 작품이 정말 멋지구나.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생각을 했니…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작업할 스튜디오를 제공했고, 작품 평가전이 있을 때에는 같은 전공 친구들과 함께 전시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했다. 가벽을 설치하고, 벽에 원하는 색상으로 페인트 칠을 하며 자기가 원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나도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고 때마다 사진으로만 보며 잘했다고 칭찬세례를 해주었다. 이런 과정들이 쉽지 않았기에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는 학부 전공대로 Fine Art공부를 계속할지, 전공을 바꿀지 고민을 많이 한 거 같다. 손끝이 야무져서 잠시 복원미술 쪽으로도 고민을 했었다.
이렇게 좌충우돌 학부과정을 보내며, 방학과 연휴기간에는 무조건 영국이나 옆나라의 미술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많이 보면 볼수록 실력이 쌓일 거라고 확신했다. 앉아서 책으로 공부해서 될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옳았던 거 같다. 많이 보고 경험한 것이 가장 큰 재산으로 남은 듯하다.
딸이 학부 때 만든 몇 작품을 소개한다. 모두 다 Fine Art 전공 과정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회화작업은 별로 안 한 듯하다. 작가의 기획의도는 생략하겠다.
1. 왜 멀쩡한 커피잔과 접시를 가져다가 resin 안에 심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집 거실 한편에 두니 멋지긴 하다.
2. 종이로 만든 공룡 알들인가. 코로나 때 한국에서 지내면서 만들었다.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외갓집 버려진 땅에 방치해 두었더니 한해 두 해가 지나면서 녹아 사라져 흔적도 없어졌다.
3. 수없는 밤샘작업을 하며 완성한 샹들리에. 전체를 초로 제작하였다. 샹들리에에 불을 붙이고 촬영하였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촛농 덩어리만 남았다. 허무한 작품. 이 작품은 정말 멋졌다. 영상으로 남아있는데, 활활 타는 샹들리에의 배경 음악도 너무 멋졌다. 부모 마음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