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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의 황금방울새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by my golden age

Mauritshuis Royal Picture Gallery


헤이그 방문은 처음이었다. 목적은 오로지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 소녀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헤이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정말 와보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 도시에서의 눈호강을 마음에 담아두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지명 <헤이그>는 네덜란드어로 <Den Haag> 덴하흐로 표기가 되고, 헤이그의 정확한 영어 명칭도 <The Hague> 임을 알게 되었다. 지도를 보니 헤이그는 북쪽 바다에 인접한 도시였다. 내 손안에 온 세상과 연결된 핸드폰을 쥐고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은데, 1907년 이준 열사는 어떻게 이곳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를 찾아올 수 있었을까. 그분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속상함이 느껴졌다. 이준 열사 기념관도 헤이그 도심에 있으니 들려보면 좋을 거 같다.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헤이그는 행정 수도로 국왕의 집무실과 총리실, 대법원, 외국 대사관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심의 건물은 13세기에 건축된 성부터 근대적인 건물들, 초현대적인 건물들까지 공존하고 있어서 근처의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헤이그를 방문하면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껴질 거다. 미술을 사랑한다면 헤이그는 꼭 권하고 싶은 도시이다. 헤이그에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품까지 소장한 좋은 미술관들이 여러 개 있다. 수백만 점의 클래식 예술품과 성화에 지칠 즈음에, 색다른 현대 미술로 재충전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 주었다.


Mauritshuis Royal Picture Gallery는 현재 국회의사당, 외무부, 국무총리실등의 행정기관으로 사용되는 Binnenhof옆에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보면 동화 속에 나오는 멋진 성 같아 보이는 비넨호프는 헤이그가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한 13세기에 자리 잡았다. 비넨호프 주변을 감싸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해자를 둘러싼 연못과 백조, 그리고 도심을 오가는 트램이 헤이그를 시간이 멈춘 도시처럼 보여준다.



미술관 건물은 절제된 듯 아담하게 예쁜 것이 순정만화에 등장하던 저택 같다. 이 건물은 신성로마제국의 공국 중 한 곳의 왕자인 John Maurice (Prince of Nassau-Siegen, 1604-1679)의 자택으로 1633년부터 지어졌다. 그는 네덜란드령 브라질 총독으로 파견 나가 있었는데, 설탕과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고, 헤이그와 브라질 양쪽에 집을 지었다. 최초 건축 당시에 이탈리아 북부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해서 그런 지 네덜란드의 건축 양식과는 어딘지 좀 다르게 보인다. 이후 1704년 화재로 외벽만 남았으나 10년 이상 걸려서 복구를 했고 이후에는 비넨호프 소속의 건물로 이용되다가, 1820년 네덜란드 정부가 왕실의 미술품 보관을 위해서 건물을 매입하면서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마우리츠하위스 컬렉션의 기본은 오렌지 공 빌럼 5세 (William V, Prince of Orange, 1748-1806)가 소장했던 미술품이다. 그가 1774년에 Prince William V Gallery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네덜란드 최초의 미술관이 되었다. (현재의 Prince William V Gallery는 마우리츠하위스 근처에 있다) 그의 뒤를 이어받아 네덜란드를 최초로 통일한 빌럼 1세가 (William I of the Netherlands, 1772-1843) 마우리츠하위스로 왕실의 컬렉션을 옮겨왔고, 그의 관심과 애정으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등을 경매에서 구매하게 된다. 이후 미술관은 Rembrandt (1606-1669)의 <Dr. Deijman의 해부학 강의, 1656>, Carel Fabritius의 <황금방울새, 1654> 등도 경매에서 놓치지 않고 구입하였고, Arnoldus des Tombe로부터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포함한 12개의 작품을 기증받으며 컬렉션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곳의 기록 중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1869년도에 헤이그에서 잠시 살았던 반고흐도 이곳을 종종 방문하여 그림을 감상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미술관은 연대별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선 베르메르의 작품부터 보고 싶은 마음에 2층의 첫 번째 방으로 직진하였다. 그 방에는 베르메르의 그림이 세 점 걸려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666>, <디아나와 요정들, 1654>, 그리고 그의 유일한 풍경화인 <델프트의 풍경, 1661>이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부터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여유가 생겼다. 아 너였구나… 그 유명하고 유명한 작품.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작고 소박하다. 화려하지 않은데 신비하고 묘한 매력이 있고, 빠져들어야만 할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Tronie 장르로 구분된다. 트로니란 초상화는 초상화인데 특정한 실존 인물을 모델로 놓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상상으로 대상의 특징적인 표정이나 성격 혹은 의상 등을 과장되게 묘사한 작품으로 쉽게 말하자면 풍속화 스타일의 초상화이다.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특히 렘브란트 작품에도 많이 있다.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면 인물의 볼터치에 핑크빛을 과하게 쓰고, 코도 좀 큰 듯하고, 눈가에는 주름을 깊게 넣어서 표정이 과장되고 해학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런 장르를 트로니라고 한다.


베르메르 <디아나와 요정들,1654>


네덜란드 황금기의 대표 화가인 Jan Steen, Frans Hals, Gerri Dou, Gerard ter Borch, Gabriel Metsu 등이 그린 풍속화를 보자. 가장 풍요롭고 번영했던 시기를 살아가던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위트를 살짝 넣어줬는데, 그 포인트를 발견하면 미소가 지어졌다. 풍속화에는 은근한 유머감각이 들어있다.


같은 방에 있는 Frans van Mieris I (1635-1681)의 작품 <The Oyster Meal, 1661>에 등장하는 남녀 커플의 모습은 좀 아슬아슬해 보인다. 주인공들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오이스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오이스터는 성적인 상징물로 여겨져 음탕한 분위기에 종종 등장한다.




이 미술관에서 만난 Goldfinch를 소개하고 싶다. 이름도 예쁘다, 황금방울새. 이 그림은 얼마나 유명한지 201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Goldfinch>의 주제로 등장하였고, 2019년에는 이 소설을 각색하여 <The Goldfinch>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그림은 작고 소박했으며, 작가의 시선에 맞춘 듯 우리 키 보다 높은 벽에 걸려있었다. 이 새는 앵무새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그냥 작은 새이다. 이 작은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자세히 보니 새의 다리에 얇은 쇠사슬 줄이 연결되어 있다. 어머나 불쌍해라. 차라리 새장 속에라도 넣어두지, 왜 붙잡아 뒀을까. 이 새는 2000여 년 전 고대 시대부터 애완용으로 키워진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능이 높아서 먹이상자를 직접 열거나 아주 작은 골무 크기의 양동이로 물을 떠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가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건강과 행운을 가져온다고 여겨져서 유행처럼 키웠다고 한다. 새가 도구를 사용하여 어떻게 물을 떠먹을지 그저 상상을 해보았다.



황금방울새는 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를 먹고사는데,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쓰신 가시나무관과 그 가시에 찔려 흘리는 핏방울과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그동안 유심히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르네상스 종교 성화에 무려 500번 이상 등장한다고 한다. 너 유명한 새였구나. 주로 성모마리아와 어린 예수님의 그림에 등장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에도 등장한다. Raffaello Sanzio (1483-1520)의 <황금 방울새의 성모, 1506>에서도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황금 방울새를 감싸고 있다.


Raffaello Sanzio <Madonna of the Goldfinch, 1505–1506>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이렇게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눈 씻고 찾아봐야 보이는 작은 새가, 이번에는 단독 모델로 발탁되어서 실물 사이즈 정도로 초상화가 그려진 것이다. 붉은기가 도는 얼굴과 노란색으로 터치된 황금색 깃털까지 그림 자체는 완벽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면이 있다. 하얀 뒷 벽의 여백 때문일까, 작가가 사망한 해에 그려진 그림이라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작가인 Carel Fabritius (*세례일 1622년-1654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10대 후반인 1640년대 초부터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스튜디오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1650년대 초반에는 Delft로 이사를 하고 1652년부터는 회가 길드에 가입하였다. 베르메르도 1653년에 같은 길드에 가입했고 평생 Delft에서 살았으니 서로 인연이 있지 않았을까. 카렐 파브리티우스는 젊은 나이였던 1654년 10월, Delft에서 있었던 화약 폭발사고로 32세에 요절하였다. 도시의 1/4이 파괴되었고 100여 명이 사망한 큰 폭발 사고로, 작업실에 있던 그의 작품 대부분도 소실되어 12점 정도만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중의 한 점이 황금방울새이다. *생일기록은 없고 세례일만 남아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작품 중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델프트 풍경, 1652>은 완성도가 높다. 베르메르와 화풍이 비슷하여 그가 베르메르의 스승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렘브란트의 제자들 중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화가라고 평가받는다. 렘브란트는 대체적으로 배경은 어둡게 처리하고 주제는 스포트라이트를 주어 환하게 그렸는데, 파브리티우스의 작품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그가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어둠과 빛의 대비가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밝고 온화하다. 황금방울새도 배경이 밝은 색으로 부드럽게 처리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렘브란트 보다는 베르메르에 더 가까워서 그를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를 연결시켜 주는 작가라고도 평가한다.


Carel Fabritius <델프트 풍경, 1652> 런던 내셔널 갤러리


베르메르 <델프트풍경, 1661>


전시를 보는 내내 방마다 다른 색상의 실크벽지와 화려한 커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감탄을 했다. 벽지와 커튼조차도 얼마나 고심해서 제작을 했을까, 유서 깊은 역사와 명성을 이어가는 이들의 감각은 정말 압도적이다. 늘어진 커튼뒤 창문으로 보이는 연못과 겨울 풍경조차도 한 폭의 작품이었고, 촘촘하게 걸려있는 작품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를 정확히 찾은 듯 잘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었다. 19세기 초에 300점 정도였던 컬렉션은 이후에 850점까지 늘어났다. 연대별로 장르별로 구성이 잘 되어 있어서, 황금기 시대 안에서도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짐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작가를 잘 모르는 채로 미술관을 보면 기억에 남는 게 없을 듯하여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어 보고 왔더니 한결 도움이 되었다. 주제와 화풍이 비슷비슷한 풍속화지만 작가들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마다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역시 공부하고 온 보람이 있어서 뿌듯했다. 첫날 방문했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시작이었을 뿐, 더 놀라운 미술관들이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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