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의 스몰버전: 존손경의 뮤지엄
2022년 12월, 런던도 이상기온으로 한파가 온다고 하더니 제법 춥다. 영상과 영하를 오가며 바람은 매섭고 손끝이 시리지만 하늘은 파랗고 걸을만하다.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런던은 외부에서 활동하기가 괜찮은 편이다. 리사의 추천으로 홀본역에서 가까운 Sir John Soane 뮤지엄으로 향했다. 박물관 바로 앞 Lincoln's Inn Fields 공원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여있었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이 공원 안에서는 강아지가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다. 공원을 둘러싼 주택들은 분위기 있고, 창문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집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원뷰는 얼마나 좋을까.
뮤지엄의 주소는 13 Lincoln's Inn Fields이다. 올리브색 현관문의 초인종을 누르면 안내인이 나와 문을 열어 준다. 실내에는 9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Sir John Soane (1753-1837)은 신고전주의 건축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립 아카데미에서 건축학 교수를 지냈고, 1378년에 영국 왕실에서 왕실 소유의 성과 주거지의 건축 및 유지 관리를 감독하기 위하여 설립한 기관인 Office of Works의 공식 건축가가 되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고, 1831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대표 건축 작품으로는 영국은행 건물이 유명하고, 영국에서 최초로 갤러리 목적으로 지어진 Dulwich Picture Gallery와 영국 총리실인 다우닝가 10번지 등이 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의 법원과 궁전의 부속실등도 건축했으나 모두 소실되었다.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가니 그리스와 로마의 청동 조각품, 납골 항아리, 로마 모자이크 조각품, 그리스 꽃병, 그리스와 로마의 흉상과 두상 등 수많은 고대 조각품이 그의 능력과 재력을 보여주었다. 런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한 사람에 의한 컬렉션으로 혼이 담긴 고대 예술품을 이렇게나 많이 열정적으로 모았다고 생각하니 그 무게감이 느껴졌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조각품들을 행여라도 건드릴까 봐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이 발끝으로 조용조용 이동하며 조심스레 관람한다.
존손경은 1778년 청년시절에 인재로 발탁되어 그랜드투어를 시작했고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다. 그는 이태리 전역을 여행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탐구했다. 런던 역시 예술원에서 인재를 양성할 때에 국비 장학생을 선발해서 이태리로 유학을 보냈다. 그만큼 이태리의 예술 문화 수준은 월등했고 주변 국가들도 인정하고 배우고자 했다. 존손경이 작업한 건축 디자인의 스케치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데, 수학적으로 계산된 정교하고 섬세한 도면으로 오늘날의 도면과 별반 차이 없어 보인다. 그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가 수집한 중요 건축물의 도면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뮤지엄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층에 전시되어 있는 이집트 파라오 <세티 1세의 석관>이다. 1817년 이탈리아 탐험가 Giovanni Battista Belzoni에 의하여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석관으로 세티 1세는 기원전 1279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탐험가 벨조니는 이 석관을 대영박물관에 판매하고자 하였으나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존손경은 지체 없이 £2,000에 구매한다. 3,300년 이상 된 이 석관은 영국에서 소장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 중 하나이다. 왕의 석관을 어떻게 이집트 밖으로 가지고 나왔을지도 궁금하고, 크기와 무게가 상당한데 자택의 지하층까지 어떻게 가지고 내려왔을지도 너무 궁금하다. 지붕을 뜯고 기중기를 사용하였을까, 상상만 해본다.
존손경은 1792년에 12번지를 구입해서 자택으로 사용했고, 1812년에는 13번지를 추가로 구입해서 자택 겸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는 점점 늘어나는 골동품과 건축 도면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하여 옆 건물인 14번지까지 구입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했다. 1825년 3월 <세티 1세의 석관>은 존손경의 집에 도착하였고, 그는 외국의 고위 인사들까지 900여 명을 초대하여 삼일 내내 파티를 열었다. 이 즈음에 12번지와 13번지 외부를 재건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석관을 들여놓기 위하여 출입구 쪽 공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엄청난 석관은 집안의 가장 아래층 중심에 배치되었고 2층까지 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로 가득 채워졌다.
1층에는 picture room이 있는데 많은 그림 중에 William Hogarth (1697-1764)의 작품들이 눈에 뜨인다. 시리즈인 <A Rake's Progress, 8점, 1732-1734>와 <An Election, 4점, 1755>의 원작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들은 1825년경에 뮤지엄에 설치된 이래로 몇 번 이동하지 않아 훌륭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윌리엄 호가스는 눈여겨 볼만한 영국출신 화가가 별로 없던 18세기 불모지에서 떠오른 영국의 국민 화가이다. 그는 사회 풍자적인 그림을 유쾌하게 그리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부패한 귀족세계의 허를 찌르고 상류층으로 진입하려고 술수를 쓰는 부르주아, 탐욕스러워 보이는 부패한 성직자, 가난에 찌든 하류층 사람들, 그리고 술 취한 남자들과 흥정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하며 교훈을 주려고 했다. 호가스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그는 정말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고, 천재가 아닌가 싶다. 호가스가 너무 궁금하여 그가 살았던 Hogarth's House까지 찾아가 보았다. 런던의 서쪽 Chiswick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호가스처럼 꾸밈없고 소박하며 정감 가는 곳이었다.
그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An Election> 시리즈는 의회선거에서 만연한 부패를 보여주고, 보수당의 승리와 지지자들의 축하파티를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 그림은 선술집에서 후보자와 지지자들의 함께하는 선거유세 정도 되는 거 같다. 두 번째 그림의 제목은 투표를 위한 여론조사인데 여관 주인에게 뇌물을 주는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세 번째 그림은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까지 끌고 와서 투표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 번째 그림은 승리한 보수당 의원의 행진과 함께 아수라장이 된 상황이다. 이 작품은 잉크에칭 버전으로도 재현되어서 다른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A Rake's Progress>의 Rake는 rakehell의 줄임말로써 방탕한 남자를 뜻하며 난봉꾼의 몰락 정도로 해석하면 될 거 같다. 그림 속의 주인공인 Tom Rakewell이 도박, 술, 여자, 사치에 빠져서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빚을 지고 몰락해 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으며 부자가 되었으나 환락에 빠져 매춘부들과 술에 취해 떠드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재산을 탕진한 후에는 빚을 갚기 위해서 나이 많고 부유한 여성과의 결혼 선택하였으나 하녀와 외도를 하며 또다시 재산을 탕진하고 감옥에 간다. 결국에는 병에 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막장 소설의 주제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어쩌면 인간사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슬픈 스토리는 1935년에 발레로 제작되었고, 이후에는 영화로도 두어 번 제작된다. 또한 유명한 러시아 작곡가 Igor Stravinsky는 시카고에서 Rake 판화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1951년에 오페라를 선보인다. Rake의 스토리가 품은 요소들은 오페라 주제로도 너무나 적합한 거 같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David Hockney도 Rake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16개 시리즈의 판화를 탄생시키고 각 50장씩 제작하였다. 재미있는 점은 호크니 판화의 주인공은 1960년대 뉴욕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젊은 예술가이자 동성애자였다. 각 챕터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가스가 짚어낸 도덕성과 같은 맥락으로 풍자하였다. 호크니는 Igor Stravinsky의 <A Rake’s Progress> 오페라 무대도 디자인했고 포스터 제작에도 참여했다. 18세기 영국 화가가 쏘아 올린 공이 20세기 오페라 무대 디자인까지 연결되었다니 미술은 알면 알수록 재미가 있다.
North Drawing Room 에는 존손경의 40년 지기 친구인 JMW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가 그린 해양 그림이 걸려있다. 런던의 코벤트가든에서 태어난 터너는 존손경과 가까이에 살았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왕립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서로의 강의에 참석했고, 템스강에서 함께 낚시를 즐겼으며, 빛과 날씨에 대한 연구를 공유했다. 존손경의 아내 엘리자가 1815년 11월에 사망했을 때 그 둘은 곧 다가온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냈다.
이 방의 노란색 벽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색소인 ‘Turner’s yellow’ 색상으로 되어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터너는 유화보다는 수채화를 훨씬 더 많이 남겼고, 바다와 하늘을 표현할 때에도 노란색과 흰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오늘날 물감에는 Turner가 태양 빛을 포착하기 위하여 자주 사용하던 노란색과 비슷한 안료에 Turner‘s yellow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사실 이 Turner는 화학자인 James Turner의 이름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벽의 노란색은 터너 그림과 잘 어울린다.
존손경은 부인을 많이 사랑했다. 그는 아내가 묻힌 St Pancras Old Church에 대리석과 포틀랜드석으로 무덤을 장식했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전화박스를 디자인 한 Sir Giles Gilbert Scott (1880-1960)은 이 묘지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지만 귀한 골동품으로 꽉 차있는 이곳. 집안의 미로 같은 구조도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대형 박물관의 고대 그리스 로마관을 축소해 둔 거 같아서 거대 규모의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3,000여 년 전의 이집트 석관을 어떤 경로로 영국인의 개인 집안까지 옮겨올 수 있었는지, 대영제국 시대의 파워가 참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사람은 떠나가고 골동품만 남아 있는 이곳, 육신은 사라지고 손길만 남아있어서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