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벚꽃 여행기
어제 나는 무려 2만 보를 넘게 걸었다. 딱히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햇살이 등을 미는 것 같았고 마음이 먼저 몸을 끌고 나간 날이었다.
주말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온다기에 서둘러 벚꽃을 보기로 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도림천으로 향했다. 아직 아침 10시였는데,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어디선가 이 길의 봄을 듣고 온 걸까? 도림천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졌다. 벚꽃은 늘 짧지만 짧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망원동의 ‘피피커피’라는 귀여운 이름의 카페에 들어갔다. 사장님은 밝게 맞아주셨고, 내가 주문할 때 했던 어색한 말투를 따라 하셔서 잠깐 웃음이 터졌다. 융드립 커피는 순하고 따뜻했다. 깔끔한 풍미에, 같이 주신 카스테라와 초코강정까지. 작지만 든든한 간식이었다.
카페를 나와 조금 더 걸어 망원한강공원에 도착했다. 높은 데서 내려다본 한강은 역시나 좋았다. 그런데 ‘서울함공원’이란 표지판을 따라갔더니 진짜 함(battle ship)이 있었다. 오마이갓.
전부터 가보고 싶던 ‘토마토코엔’에 가기로 했다. 기다리면서 패딩을 잠깐 야외테이블에 올려놓았는데, 밤새 내린비가 고여있었나보다. 햇볕이 좋아서 한참 가방에 넣어둔 패딩이 꺼낸 그 순간 젖어버렸다.
혼자였지만 의외로 4인석에 앉게되었다. ‘언제 혼자 4인석 써보겠어?‘ 생각하며 오므라이스와 ‘냥박스테이크’를 주문했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고양이를 그려주는 메뉴. 귀여운 비쥬얼에 맛은 기대도 안 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입을 데어가며 허겁지겁 '순삭’해버렸다.
디저트로 커피가 나왔지만 배가 불러 반쯤만 마셨다. 잔은 예뻤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아까 피피커피에서 마신 융드립이 완벽해서였을까? 이번 커피는 조금 썼다. 계산대 옆 수조 안에 자라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오늘은 귀여움이 많은 날이네.
근처 소품샵을 둘러보다 책을 반납하러 청파도서관에 들렀고, 그 길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까지 걸어갔다.
생각보다 훨씬 더 웅장한 이런 곳이 무료라니 놀라웠다. 정장을 입은 남자분들이 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는 걸 보며 잠깐 눈호강도 했다. 헤헤.
마지막은 약현성당.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 스테인드글라스가 햇살을 머금은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성당이 주는 그 특별한 기운을 나는 좋아한다.
이렇게 봄은 집순이도 밖으로 끌어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향기로웠고, 하루는 길었다. 아무 계획 없이 걷기 시작했지만 걸을수록 풍경이 생겼고, 그 안에 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