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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규 Dec 31. 2023

내 옷장보다 작은 방

이제는 애 아빠가 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여행을 다녀왔다. 사회에서 평생 역할극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는 이들과의 시간이 매우 특별하다.


3일의 여행 숙소를 꼬박 방에 침대 4개가 다인 아주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다. 돈이 없거나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친구는 여의도에 자기 사무실이 있을 정도다.)


고등학생 시절 서로의 숨소리마저도 공유하던 기숙사 방이 문뜩 떠올랐다. 집도, 돈도, 아내도 없던 그 시절에 우리가 가진 거라고는 서로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내 옷 방보다 작았던 우리의 숙소 방은 4명이서 함께 사용하기에는 턱 없이 비좁았지만 이상하리만큼 3일 내내 정말 깊은 수면을 취했다.


아침 출근이 몸에 베여 제일 먼저 눈을 뜨면 다른 친구들이 열정적으로 코 고는 소리에 얼마나 그들이 잘 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하는 애들인데도 이 방에서는 약속한 기상 시간이 되어 깨워도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 작은 방이 주는 매력이 무엇이었을까?


이 작은 방보다 두 배는 큰 내 방에서 혼자 누울 때면 가끔 잠에 들지 못해 밤을 꼬박 지새운 적도 많다. 그러나 내 옷 장 방보다 작은 이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어느덧 20년을 같이 한 친구들이 주는 안정감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잠을 선물해 주었다.


더 넓은 집 문을 열기 위하여, 더 비싼 침대에 누워 잠들기 위하여, 아득바득 살던 지난 시간들이 참 묘하게 느껴진다. 이 시간, 이 공간 그리고 이 사람들, 가치를 환산할 수 없다.


10대 때가 참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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