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지 못한 엄마를 기리며
일주일 동안 엄마는 하루에 한 번 , 영상의학과로 실려가 사진을 보며 폐에 든 물을 조금씩 차례로 빼냈다
한꺼번에 빼는 것이 아니라 유착되지 않게 조금씩 , 천천히 뺀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복도 끝에서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고 (소변줄을 빼달라는 엄마와 참고 적응 하라는 나)
물을 빼고 나니 숨 쉬는 게 편안해지시며, 아픈 증상이 가라앉아서인지 지낼만하셨다
일주일 후 다시 동네 병원으로 오셔서 지내게 되셨는데
의사가 만나 보실 분 있으면 오셔서 만나 뵙게 하라는 것이었다
즉 이제 삶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나마 정신이 있을 때 뵙게 하라는 배려다
언니는 비행기를( 환승 포함) 타는 시간만 20여 시간의 비행 끝에 6월에 들어갔다, 7월에 다시 나왔다
엄마가 친정에서는 일가 포함 서열 1번이라 여기저기 흩어져 사시는 사촌동생들에게 동생이 일일이
전화를 드려 형편 되시는 대로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단 한꺼번에 오시지 말고 나눠서 와 주십사 하는 당부도 같이 드렸다
약속을 하셨는지 일주일에 두 분씩 오셨다
시집 조카 결혼에 이 근처 왔다가 언니 생각 나 왔다가 단골 멘트였다
엄마는 아프고 볼일이다 니들이 여길 다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배웅 나온 나에게 얼굴도 잘 생각 안나는 이모들은 엄마가 생각보다 괜찮으시다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작된 나 아는 이도 암인데 의사 말보다 오래 살았다로 너무 걱정 말라고
나와 동생을 향해 등을 두드리며 걱정과 염려, 희망을 갖게 하셨다
동생이 모시고 나가 병원 근처에서 점심을 사드리고(주로 냉면) 근처 전철역까지 배웅 후
약간의 차비를 드리는 것으로 의전을 끝냈다
이때쯤 엄마는 병원 밥은 못 드시겠다 넘기는 게 어려우니 죽을 드시겠다고
죽을 사 오란다
병원 옆에는 브랜드의 죽집이 있어 사다 드렸으나 안 넘어가신단다
그래, 효도가 별거냐, 주부경력 30년이 다 돼 가는 딸이 있는데 쑤면 되지
그날부터 잣죽, 깨죽, 단호박죽, 녹두죽, 동네 등산로 앞 두부집에서 파는 콩죽
전복죽은 비리다고 탈락, 쇠고기 야채죽도 입에서 거슬린다고 탈락
죽을 쒀 가야 어른 숟갈로 두 숟갈이면 미뤄 놓으셨다
약이 독하니 한 숟갈만 더 드시라는 나와 안 넘어간다고 내려놓는 엄마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동생은 내편도 들었다, 엄마편도 들었다 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며 시간이 흘렀다
와서 보고 갈 집안 동생들에, 창원사는 조카까지 다녀갔다
그럼에도 마지막 딱 한 사람
반드시 꼭 와야 할 엄마의 질긴 사랑
큰아들이 안. 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