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지 못한 엄마를 기리며
엄마의 아프고도 아픈 손가락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고 있는 내 밑의 남동생
결혼도 하지 않았고, 까다로운 그 입맛을 누가 맞출까 싶은
체육시간에 스탠드에 앉아 있거나, 교실에 열외로 있는 그 아들이 위축될까
체육복과 교련복을 칼 주름을 잡아 입혀 보내던 엄마
그 아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마지막 순간 까지도 생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신 거다
하는 수 없이, 정말 그 무게가 감당키 어려워 겨우 겨우 말했다
엄마 걱정 마 ㅇㅇ는 내가 돌볼게
엄마의 감긴 눈에서 한 가닥 눈물이 흘렀다
모니터에서 삐~~~ 하며 0을 가리켰다
간호사가 담당의를 불러오니, 시계를 보며 의사가 선언했다
조ㅇㅇ님 20ㅇㅇ년 8월 17일 15시 운명하셨습니다
엄마 얼굴 위로 흰 천이 덮이고 우리에게 장례식장을 정하라 했다
울 겨를이 없었다
장례식장으로 가고 나서는 선택의 연속
제단의 꽃을 정하고 수의와 관, 사망 확인서, 장례음식과 음료, 술
그리고 장지까지 (화장 후 모실 곳까지)
각자 지인에게 부고를 보내고, 장례예식을 어떻게 , 누구 출석교회 목사님께 부탁드릴지까지
황망함과 정신없음 가운데 일사천리로 장례식은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장례식이 그렇듯,
오랜만에 만난 지인끼리의 언성 높아지는 건 국룰인가 보다
오랜만에 4남매가 얼굴을 맞댔으나 직접적인 대화는 피하고 조카들을 통해 의사를 전했다
2박 3일의 장례식은 각자의 손님을 맞으며 무사히, 큰소리 없이 잘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