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전상서(1)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꼭 그래야만 했냐고 묻고 싶다.
돈이 뭐길래, 돈이 얼마나 좋으면 남의 집 귀한 딸을 개수대 수세미처럼 대했느냐고
내가 결혼하고 40일 후에 둘째 시동생이 결혼을 했다
시아버지의 정년이 다음 해 8월로 정해졌기에 그 안에 아들 둘을 치우려는 계산에서
10월, 11월 한 달 사이에 둘을 해치웠다
장남인 남편의 분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직장이 화곡동~동인천이었음에도)
아마도 시어머니는 우리 친정에서 살 집을 해줬어도 반대를 했을 것 같다
둘째 시동생은 대기업에 재직 중이면서, 처가에서 막 커져 나가는 강남 끄트머리에 18평 아파트를
그것도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해 줬다
거기에 혼수는 시어머니 생전에 처음 본 비단 보료, 8폭 병풍, 백화점 보자기에 싸인
과일, 쇠고기, 견과류 등등등
시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연신 아이고 이게 다 뭐라니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 동서의 친정 부모는 그 당시엔 연예인도 하기 어려운 이혼을 한 가정이었다.
동서 3살 때, 이혼을 하셔서 동서는 할머니, 큰엄마, 조금 커서는 재혼한 아버지 집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어렵게 자랐다고 했다
20살이 되어서야 재혼에 성공한 엄마가 언니와 함께 살 집을 구해 주어서야 제대로 편안히
살게 되었다고 언젠가 말했다
엄마는 그건 큰 흉이다 라며 그 양반은 본인 흉을 돈으로 덮는 거니 너는 기죽을 일 없다고 했지만
받아 드리는 시어머니에게는 오직 신세계가 열린 듯했다
아들이나, 부모인 본인들이 땡전 한 푼 안 보태고 새로 지은 아파트라니
사돈인, 친정 엄마의 재혼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혼 가정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40여 년 전의 정서로는 흉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25살 가을의 내 결혼, 신혼생활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