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전상서(6)
5월임에도 집 안의 공기는 냉장고의 온도와 같았다
아파트 현관 앞 심어 놓은 덩굴장미는 세상 화사하게 피어났고
밥상머리에서도 별 이야기 없이 밥을 먹고 뿔뿔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그뿐이었다
화곡동에서 이혼시킨다는 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이혼은 하면 안 되지만, 만약 한다면 자신이 증인이 되어 주겠노라고
웃음도 나오고 서글펐다
고맙다 니우정 하며 말을 마쳤지만 씁쓸했다
인천으로 이사와 같은 교회를 다니며 만난 친구들은 한 두 살 차이로 30대 중, 후반였다
그런 우리는 시어머니가 모두 계셨다. 증인이 돼 주겠다고 한 친구는 나와 동갑으로 외아들이었고 남편이
의대 다닐 때 결혼해 생활비, 학비를 시댁에서 부담하시느라 시집에서 미운털이 조금 박혀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시어머니는 top of top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 있자면 자기 시어머니가 괜찮은 사람 같이 생각되었단다
그렇게 시집 흉도 보면서 우리는 같이 나이 들어간 사이였다.
6월이 가고 7,8월 그리고 추석이 왔다
남편과 아들이 봉투를 들고 화곡동엘 다녀왔다
현관에서 구두를 벗는 남편 등 뒤에서 아들이 손을 들어 X자를 표시했다
남편은 굳은 얼굴을 펴지 않은 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방문 쾅
방문은 죄가 없다
이혼도 못하고, 나도 설득 못 시킨 채로 가을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했다
구정에도 봉투를 들고 아들과 본가를 다녀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얼래, 이런 세상이 있네 라며 그동안 과하게 부과되었던 주방일에서
해방되어 나름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아들이 쓱 내 곁으로 왔다
우리 애들 특: 뭔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꼭 엄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니까를 첨부시켰다
엄마 할아버지가 식사를 거의 못하시네
엄마가 뭐 조금만 만들어서 내일 화곡동에 갖다 드리면 안 될까?
남편이 부탁했으면 택도 없지만, 아들의 부탁이다
자식의 말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