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穀船(세곡선)

세상 밖으로

by 대나무 숲

세곡선의 사전적 의미: 租稅(조세)로 거둔 곡식을 실어 수송하는 배


600년 전에 물속에 가라앉은 나무배가 잠수부들의 기술과 노력으로 해체되어 물 밖으로 들어 올린다고

뉴스에 나왔다. 600년 전 나주에서 나라에 바칠 공물을 싣고 서해의 태안 마도해안을 지나다 풍랑을 만나

뻘 속에 묻혀있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는 것이다

나주 광흥창이라 쓰인 木簡(목간)도 발견되었다고 한다(그래서 서해의 마도 해안은 풍랑이 심해

신안 유물선부터 많은 배들이 침몰되어 있어서 바다의 경주라 불려진다고 한다)

염분을 빼고 보수 한 뒤에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 한다

보물이 될 것이다

수십 미터 깊고 캄캄한 뻘 속에 묻혀있다 세상 밖으로 나와 비로소 빛을 발하며 보물이 되었다.

보물이다


나에게도 깊이 가라앉은 배가 있다

브런치를 통해 조금씩 수면 위로 끌어올려 보지만 쉽지 않다

섣불리 끌어올리려다 뻘에 묻혀 있던 보물선이 도리어 훼손되듯

내 안의 무거운 상처를 덧내는 것은 아닌지....

40년이 넘는 결혼 생활 중 요즘이 제일 평안하다

행복 까지는 아니고 그저, 그날이 그날로 지내는 요즘 일상이 심심해도 좋다

늦은 밤,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면 불쑥 떠오르는 기억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질 때가 있다

나의 작은 실수나, 본인 맘에 들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입가에 거품을 물어 가며 나를 닦달하던 그 모습

억센 목소리와 강한 억양

몸이 부르르 떨린다

포악을 떨다 시아버지 오실 때쯤이면 자리를 펴고 눕는다

심상찮은 집안 공기에 전, 후 가리지 않고 왜 시어머니 기분 하나 못 맞추냐며 불호령은 떨어지고

퇴근 한 남편까지 함께 한 식탁에서 시아버지는 남편을 향해 마누라를 잘 얻었어야 네 인생이 편안한 건데 라며 혀를 차고 일어섰다(시아버지 본인의 인생 불찰을 그렇게 쏟아 냈다)

그 당시 몸무게가 38kg이었다

거식증처럼 밥을 넘기려면 구역질이 올라와서 도로 넘어오려 하는 걸 겨우 물을 마시며 삼켰다


600년을 묻혀 있었어도 그 속에 실린 물건은

변하지 않고 빛나는 것처럼 내 안의 커다랗고 어두운 상처는 나도 모르게 가시가 되어 나를 찔러 곪게 되었다

어떤 게 트리거가 되는 줄도 모른 채 곪아있는 내 상처를 남편과 아이들에게 퍼부은 적이 더러더러 있었다

나의 폭풍 같은 화냄에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이냐며 남편은 황당해했지만 한번 화가 나면

나는 멈춰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자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남편도 잘 아는 , 부부끼리 식사도 하는 지인과 발동이 걸리면 밤 10시에 세면도구만 챙겨 길을 떠났다

1박 2일 동안 1,200km를 운전을 하며 돌아다녔다

거제의 지심도, 해남 , 벌교, 구례 , 강구, 영덕

한 3년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매화가 피어서,

복숭아꽃이 피어서,

청보리가 익어가서

가을 내장산 단풍이 고와서

갱년기가 시작된 아줌마 3~4명이 차 한 대에 타고 서로의 서러움을 털어내며 울고

같이 욕해주고 등을 두드려 주며 공감하고

1박 2일을 울고 웃다 집에 오면 한 달은 견딜만했다

그러고 나면 몸이 근질거려 핑계를 만들어 길을 떠났다

그렇게 3년여를 놀고 나니 부유물처럼 떠 다니던 찌꺼기 같은 감정들은 다 가라앉아

언뜻 느끼기에 살 만 해 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딸이 말해주길 엄마에게 남자가 있나 의심을 한 적도 있다고 해서 놀랍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같이 놀던 지인들도 대충 정리도 되고 , 친정엄마도 돌아가시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하루가 심심해도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였다.

그렇지만 돌같이 어둡고 무거운 내 깊은 곳의 상처는 더 단단해져 잊으려 할수록 나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내 마음 깊은 곳의 세곡선은 끌어올려지고 있다

조심히, 최대한 망가지지 않게

조개의 상처가 시간이 흘러 진주가 되듯이

나도 내 삶의 아픈 경험이

나를 빛내 주길

나이 든 내 인생도 찬란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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