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소월
보통은 국어 국문학과라고 해도 국어는 생각을 안 한다
국문학과에서 시나 수필, 더 나아가 서는 소설가을 꿈꾸었을지도.....
23년 3월에 방통대 국어국문학과에 털썩 입학을 했다
22년 가을, 동네 소금밭 사거리에 내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별 망설임이나 고민 없이 입학 신청을 했다
(사실 밥 하는 것 외엔 별 일 없이 지내는 하루였기에 무료했다)
입학은 어렵지 않았고 역사학과나, 심리학과가 없기에 그냥 `국문학'과로 정했는데
그건 내 패착이었다 ㅎㅎㅎ
국문학 앞에 국어가 붙는 의미를 몰랐다
국어는 말 그대로 우리말 국어를 좀 더 자세하고 제대로 배우는 학문이다
우리가 듣고 말하는 것 중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는지는
KBS 우리말 겨루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남편 학교 후배 국어 선생님이 나중에 듣고 아이고 왜 그 어려운 과를 하시며 걱정했다는)
보통은 국문학만 알고 들어 오는데 엄연히 전공과목으로 국어학이 두둥 존재한다
언어와 생활, 중세 국어의 이해, 국어학 개론, 맞춤법과 표준어, 글쓰기
머리를 쥐어뜯고 들어도 책이나 워크북을 덮으면 끝
(심지어 같은 구간을 5번 들어도 무용지물 되는 내 기억력)
깨끗이 지워져 있다
대부분 중간고사는 객관식이다.
본인이 정한 날짜에 맞춰서 입실한 후에 신분증 제시 후
각자 주어 진 패드를 받고 1문 제당 1분, 25문제를 25분 안에 푸는데 보통 2~3과목을
푸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50분에서 75분이다
다른 과목은 드물게 A 제로를 맞기도 하고 보통은 B+을 맞는데 유독 국어과목은 C가 나왔다
남편 왈 ; 비타민이야 왜 C야 한다 허~~~~~~~~ㄹ
아무튼 코를 끌어가며 이렇게 저렇게 학기를 마치곤 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다른 과목은 學而時習之 不亦 說乎라 했듯이 고교 시절에 배웠던 고문이나
옛시조나 옛 구전소설, 설화 등 인터넷으로 듣는 강의는 딴짓을 하며 흘려듣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은 몇 번씩 다시 듣기도 하며 보냈다
지난봄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의 첫 단원에서 소월을 만났다
작가 소개, 작품세계의 특징, 작품 원문 및 해설, 결론을 통해 다시 만났다
진달래 꽃이나, 초혼, 산유화등 고교 시절의 교과서에 실려 배웠던 작품은
아름답고, 슬픈 서정적인 시였다
그러다 만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더면'은
다른 시세계를 보여 주고 있었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의 삶은 그들의 터전을 잃고 몰락하고 유민화되는
보편적인 현실이었다
보섭대일 땅도 없이 떠도는 가련한 처지이다.
사전에서 보섭은 `길을 걷고 물을 건너다'로 표기되지만 `보습'의 비표준어라 나온다
보습은 쟁기, 극젱이, 가래 따위 농기구의 술바닥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으로
표기되어 있다
농기구 하나 대일 땅도 없던 백여 년 전의 조선, 그리고 극한의 가난을 마주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던 이 땅의 백성들
배우면서 울컥했던 많은 내용이 있었다
백석의 시 `여우난 곬족, 은 그나마 농촌공동체의 화목함과 따뜻한 풍경을 그렸지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는
백석의 자기 인식 내용이었다고 교과서에 쓰여있다 (신의주 남쪽의 유동에 사는 박시봉 씨 댁)
지금 이 나라의 풍요를 그분들은 짐작이나 하셨을까?
내가 중학교 시절엔 혼, 분식 장려를 했다
쌀이 모자라기에 전 국민이 보리를 섞어 먹도록 계도, 장려하며 학교는 검사를 하였다
점심시간 전,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아이들이 도시락 뚜껑을 열어 놓은 걸 보시며
분단 사이를 지나가셨다 가끔은 보리쌀을 섞지 않고 살짝 덮어 온 친구도 있었다
뉴스에서 국민 쌀 소비량이 점점 줄어 쌀 경작지는 줄어들고 다른 대체 작물을 키운다 하는 뉴스에
지난 학기에 배웠던, 식민 시절의 우리 국민의 헐벗고 굶주린 일상이 불과 100여 년 전인데
지금 이 땅은 넘치는 풍요를 누리고 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그분들의 수고를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기억할까 하는
어쭙잖은 애국심에 몇 자 적어 봤다
보섭대일 땅을 바라고 바랐던 그분들의 염원이 넘치도록 이루어진 지금
이 풍요로움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