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웃었다고 같이 울어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나 간 기억 속에서

by 대나무 숲

우리 집 남매의 사교육은 예, 체능 위주로 받았다

예체능이래야 방학기간 수영, 스케이트, 아들은 겨울 방학에 학교에서 하는 스키 캠프

피아노, 바이올린, 합창단( 교회, 학교, 월드비전)...

우리 형편에는 버거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체험시켜 주고 싶어서

기회가 있을 때 참여케 해 주었다

문제는 학교 공부

그중에서도 수학은 난제 중 난제였다

영어는 윤선생 영어로 기초를 닦아서 듣기 평가나 단어에 어려움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된 영어는 고1이 되어서야 그만두었다

(이 비용도 만만치는 않았다)

지금도 우리 남매는 자기들의 영어는 윤선생이 시켜 주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루에 단어 26개씩 다섯 번 쓰고 마지막 1칸 남겨 놓고 선생님이 오셔서 시험 보고

틀린 단어 다시 외우고 , 매일 테이프를 듣고 선생님과 짧은 통화로 아이들은 별 어려움 없이

영어에 진입했는데 문제는 수학이었다

명색이 수학선생님 아들, 딸이 수학 때문에 좌절을 느끼고 있어도 학원은 안된다는 남편의

강경론에 딸아이는 수학 시험지를 받으면 앞이 안 보이기까지 했다고 나중에 말을 했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우리 아이들에게 한 말이 정작 아이들에겐 짐이 되었다

아빠가 수학 교사인 걸 알고 나면 "아~ 유 너네들은 수학은 아무 걱정 없겠다

좀 좋아 아빠가 수학선생이라서"

뭐가 좋다는 건지??? (딸의 전지적 시점)

아빠는 거의 방치해 준 수학이었고 학교 수업 외엔 방문 학습지만 허용하고 나중엔

학교로 보낸 학교 교과서 외 다른 출판사의 문제집을 갖다 주는 걸로 임무 끝

동네에서 우유병 떼고 만난 친구들이 있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레 친해진 사이다

ㄱ은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ㅂ은 중학교만 같이 다녔다

주일에는 교회 버스 타고 교회 학교를 유치부부터 같이 다녔다

당연히 그 아이들의 엄마와는 하루에 평균 2번은 보는 사이로 동네에서

ㅇㅇ교회 마피아 소리를 들으며 같이 뭉쳐 놀았다

아빠들끼리도 형님, 아우 하면서 휴가도 같이 보내고 각자 집안 경조사를 챙기는 사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 보는 사이는 별 다름없었다

문제는 ㄱ,ㅂ의 아빠와 남편의 봉급 즉 수입이 차이가 나면서 아이들이 나뉘었다

ㄱ의아빠는 대기업 부장, ㅂ의 아빠는 개업의

우리 남매는 홈 스쿨링에 가까운 사교육이라면 ㄱ,ㅂ은 엄마들이 운전면허를 따서

본격적으로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둘 다 바이올린, 영어, 수학, 논술)

나는 모르는 區를 넘어 소문난 선생을 찾아다녔다

나는 불안했지만 그나마 담담했던 건 딸아이는 곧잘 따라갔기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나도 아이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지만 어디론 가 들어가기엔

이미 그들의 네트워크는 단단해서 나 같은 초짜는 문을 두드리지도 못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물어봐도 한결같은 대답은 `지금은 자리가 없다'였다

3학년의 수능이 끝나 자, 딱 요맘때 2학년이던 아이는 바로 3학년 체재로 들어갔다

다행히 영어는 1년 전 줄을 섰던 그룹 과외에 가장 높은 레벨의 반에 들어갔지만

수학은 개인 과외 외에는 해결책이 없었다

그것도 장님 문고리 만지 듯 더듬더듬 알아봐도 알려주는 번호가 없었다


주일, 교회에서 돌아온 딸이 하는 말

엄마,ㄱ이랑 ㅂ이 같은 수학 문제집을 풀더라

수학을 어디서 풀어?

성가대 연습 하면서 숙제 밀렸다고 꺼내 놨는데 같은 프린트야 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하자 딸아이가 과외가 같은 데라고요~~~ 한다

ㄱ,ㅂ이 같은 과외야? 하니까 그렇단다

내가 알기론 ㄱ도 적당한 수학 팀을 못 찾았다고 불과 며칠 전 걱정을 했는데 무슨?

이어지는 딸의 말

ㄱ이 아줌마가 ㅂ이네 한테 수학 선생님 번호 받아서 같은 선생님한테 하는 거래

1~2명 그룹 과외를 하는 수학을 ㄱ 따로, ㅂ따로 하는데 아무튼 선생은 같다는

내겐 엊그제 금요 예배를 가면서 만난 ㄱ엄마의 얼굴이 떠 올랐다

아무 말 없었는데......

어찌 됐거나 아이에겐 걱정 말라하곤 엄마가 알아본다며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ㅂ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ㅂ아 수학 선생님 번호 ㄱ이네 줬어?

한참을 머뭇거리던 ㅂ이 엄마 ( 인천 와서 처음 사귄 동갑내기 친구다)가

마지못해 어~~~~~ㅇ

어떻게?

(ㄱ이 엄마가 4살이 많아 어쩌다 보니 형님이라 불렀다)

형님이 사정사정해서 줬는데 내가 ㅇㅇ이랑 ㄱ이가 같은 학교이고 하니

같이 팀을 꾸리면 돈도 반으로 줄고 하니 그렇게 하세요 하니

너 절대 ㅇㅇ이 엄마한테 입도 떼지 마, 우선 나 혼자 할 거야 했단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봤다 해도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았다

이때도 십자수를 들고 있었다 ㅎㅎㅎ

전화를 끊고 나니 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바늘을 쥔 손이 다른 손을 마구 찔렀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바늘 끝이 뾰족하지 않아 찔려도 피는 안 났지만 손가락에 긁힌 상처를 남겼다

진정이 되지 않아 양 팔로 내 몸을 껴안았다

잠시 후 현관 벨이 울렸다

ㅂ이 엄마였다( 옆 동네 살던 그녀가 날아왔다)

울상을 하고 들어 선 그녀는 ㅇㅇ아 미안해

나는 형님보고 ㅇㅇ이랑 ㄱ이 같은 학교고 하니까 팀을 같이 묶으라고 했어

근데 형님이 일단 한 달 후에 다시 팀을 짜 본다고 나보곤 입만 다물라고 해서....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때까지도 진정이 안 되는 나를 보고 울상이 되어 사과를 했다

됐어 얼른 가!

나, 너도 형님도 당분간 안 보고 싶어

우리가 10여 년을 만나면서 차 한 잔없이, 수다 없이 용무를 끝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 후엔 죽어도 안 본다는 나에게 ㄱ이 아빠가 만취해서 맥주를 사 들고 와서는

막냇동생 같은 나에게 나를 봐서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읍소가 있었고

우리 딸 하나 제쳐서 ㄱ이가 서울대를 간대요? 이대를 간대요 하며 한참을 펄펄 뛰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그 아이들은 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고

같은 과외 못한 우리 딸만 아직 미혼의 라이프를 산다ㅎㅎㅎ

수능을 망친 아이의 엄마 일 때도,

과외를 제대로 못 시킨 게 무능한 부모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앞 산 같은 바위도

지나고 나면 작은 돌덩이에 불과하다

나를 덮치는 산더미 같은 파도도 지나고 나면

발 밑을 적시는 작은 파도에 불과하다

수능을 끝낸 이 땅의 어리고 귀한 아이들에게, 그 옆을 함께 했던 엄마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PS: 이혼 후 싱글 대디의 삶을 사는 분의 유튜브를 보다 나온 말이

내게 너무 와닿았다

같이 웃었다고 같이 울어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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