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여, 고마워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얕다는 것이다
남이 잘되면 좋겠다 하고 같이 기뻐해주는 것에서 끝난다
친구들이 차를 바꾸거나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도 밥 사라 하면 끝이었다
왜 쟤는 잘되는데 나는? 하며 내 속을 볶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각자의 분복( 分福)이 있음을 스스로 알고 순응했다
내 주변의 형제, 친구, 지인을 통틀어 그들과 나의 경제력을 순위로 매겼을 때
1에서 100으로 순위를 정한다면 단연코 1위는 나의 친언니이다
내가 복권에 20번 당첨되어도 그녀의 재력엔 닿기 힘들 듯하다
아무튼 그렇다......
나는 97위쯤
언니와 나는 5살의 나이 차이가 났다
같이 어린 시절의 놀이를 해 보며 크질 않았다(공기, 인형놀이, 고무줄등)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언니는 입시에 집중하느라 아침 일찍 나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6.25 전쟁통에 2남 1녀를 잃으시고 서울 수복 후 낳은 언니는 딸이라 해도
애지중지로 컸다. 6학년 때까지 세숫물을 또래의 밥 하는 언니가 툇마루에 떠다 주었다
거기는 아버지와 언니만 가능한 zone이었다
할머니도, 장남인 오빠도 마당에서 하는 세수를 아버지와 언니는 그곳에서 했다.
그런 언니가 그 당시로는 꽉 찬 스물아홉, 가을에 결혼을 했다
형부는 미국 유학생
5월에 선을 보고 , 8월에 약혼식, 10월에 결혼식, 12월에 미국행
일사천리로 번갯불에 콩 볶듯 해 치웠다
약혼식에서 자개함과 나무함 두 개가 전해졌다
이름도 모르는 보석 세트가 열 세트가 넘고 다이아가 일상에서 끼는 3부 하나,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 끼는 가드링이 딸린 1캐럿 반지까지
부잣집 막내아들과 형편이 어려워진 동생이 줄줄이 달린 장녀의 결혼이었다
형부가 여러 번의 선에도 싫다 하더니 언니를 보곤 첫눈에 맘에 들어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해 우리는 혹여라도 경제적 도움을 바라는 거로 보일까 봐
극도로 조심 또 조심했다
그래도 광에서 인심 난다고 언니가 엄마의 통장 역할을 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언니는 첫 딸을 낳고, 세 살 터울로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나도 첫 딸을 낳고 두 살 터울로 아들을 낳았고
우리보다 늦게 결혼한 오빠도 첫 딸, 다섯 살 터울의 아들을 낳았다
우리 아들과 언니 아들은 같은 나이 동갑이었다
비록 언니가 3월에 낳고 내가 11월에 낳긴 했어도...
엄마의 열성을 넘은 극성에 가까운 자식 뒷바라지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언니도 형부하나 믿고 간 타향에서 유치원부터 두 남매의 대학 입시까지
15년을 달.렸.다
하루 300km가 넘는 운전을 하고 주말에는 수영선수로 발탁된 큰 조카의
수영시합까지 온몸을 갈았다
그 덕에 큰 조카는 미국 국가대표까지 되었다 (올림픽 대표는 안되었지만)
그리고 남매의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까지
작은 조카가 하버드에 입학 못한 게 평생의 한으로 남은 듯 하지만 ㅎㅎㅎ
아무튼 이루고 싶은 걸 이룬 듯해 보였다
시집에서 보내 주는 돈으로는 투자를 잘해서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었고
결혼 20주년에는 그동안 수고 했다고 형부가 5캐럿을 선물했단다
헐~~~~
1년 차이로 결혼기념일이 같은 나는 19주년에 동네 횟집에서 한 접시 회와
알탕으로 한 끼 식사를 했는데 ㅎㅎㅎ
아무튼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식구 모두가 각자 약속이 있어도, 나는 동생 저녁을 차려 놓고 나갔다
그래서였나 언니는 12월 말쯤 동생을 본인 집으로 불렀다
다리가 불편한 동생이 겨울에 다니기 어려우니 겨울은 따뜻한 본인 집에서 지내라고..
겨울을 보낸 동생은 2월 이 되어서야 오곤 했다
어느 해, 그 해도 돌아오는 동생을 공항에서 만나 우리 집으로 와 짐을 풀었다
선물이래야 비타민, 그 동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아웃렛에서 가격이 확 깎인 폴로 티
뭐 그랬다, 돈이 많은 건 그 집 사정이고 선물까지 매번 차고 넘칠 순 없으니까
가방을 정리하는데 낯선 박스가 보였다
뭐냐 이건? 내가 묻자 동생이 이거 ㅇㅇ거야
일주일 전에 판매가 시작 된 애플의 아이패드였다
대학을 3년 만에 마치고, 대학원 입학을 해 놓고 한국에 나와 놀러 다니는 조카의 몫으로
사 온 막 출시 된 따근 따끈한 아이패드
미국에서도 둘이 가서 2시간 줄을 서서 샀단다
이거 만지지 말래
ㅇㅇ이가 뜯게 놔두랬어
옆에서 보는 아들의 눈이 부러움에 빛났다
와 ~~~~~ㅇㅇㅇ 좋겠다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 역력했다.
내가 됐어 , 만지지 마하며 가방을 거칠게 닫았다
부글부글 부글 속이 끓어올랐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퍼부어 댔다
어쩜 두 년놈이 똑같냐고
둘아 가서 줄을 섰으니 두 개를 살 수 있을텐데
우리 ㅇㅇ이 거 하나 더 사 오면 그 집 기둥이 뽑히냐
나한테 문자라도 해서 내가 사 올 테니 돈을 달라 하면 내가 떼 먹냐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준다
뭐 아무리,어떻게 퍼부어 대도 분은 가라앉질 않았다
치사하지만 내가 그동안 지 아들 한국 오면 돌봐 준 게 얼만데 등등
어떻게 해도, 부러워하는 아들의 눈빛이 지워지질 않았다
얼마 전, 아들 친구 엄마들과 오랜만에 근교로 밥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 고3 여름 방학 보충수업 때 간식 넣어 주며 만난 사이라 웬만한 가정 대소사는
알고 지내는 막역한 사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 아이패드 얘기를 했다
나는 처음이라 생각해서 하는데
언니라는 게 어쩜 그러냐고 치사한 인간이라고 하며 열을 내려는데
운전을 하던 친구가 웃으며, ㅇㅇ아 그 얘기 벌써 세 번이나 했어
네가 진~~ 짜 마음 상했나 보다 하며 형제라도 다 달라한다
그랬구나
나는 몰랐던 ,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했던
그때의 마음 깊이 파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찬송가 301장 1절의 가사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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