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머리는 맛있다
魚頭肉尾;물고기는 머리, 짐승고기는 꼬리가 맛있다는(한자성어)
요즈음은 집에서 생선을 잘 구워 먹지 않는다
냄새도 나고 프라이팬에서 구운 생선은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
생선구이 전문점에서 전용그릴에 구워주는 생선이 입에 맞는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식사장소가 화덕에 구워주는 생선구이 전문점이었다
각자 입맛에 맞는 생선을 골라 주문을 하고 식사를 하는데 얼추 다 먹은 내 접시를 본
친구가 ㅇㅇ아 다 먹은 거야? 하기에
응 다 먹었어하니 아이고 이렇게 먹으면 되냐
맛있는 데는 다 남기고 대충 먹으면 아깝지 한다
나는 젓가락으로 바르기 좋은 살 많은 부분만 먹고 생선대가리와 가시가 있는 배부분은
그대로였기에 친구는 내 접시를 당겨 바싹 구워진 생선대가리와 뱃살 까지도 알뜰히 발라 먹으며
맛있는 걸 남겼다고 먹을 줄 모른다고 어이구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수년 전의 어떤 일이 떠오르며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시아버지 장례를 마치고 각자 삼 형제 앞으로 들어온 부의금, 장례식장에 줄 돈, 기타 비용을
아들이 엑셀로 정리해서 막내 시동생과 남편에게 각각 한 장씩 뽑아서 주고 남은 돈을 내놨다
막내 시동생은 총비용 나누기 3 해서 모자란 부분을 내놓으란다
그 방법에 내가 반대를 했다
총비용 나누기 3은 맞지만 부의금은 각자 몫으로 주기로
즉 본인 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을 본인이 가져가고 비용은 나누기로 하자고 했다
부의금 액수가 많았던 우리를 제외하곤 남은 두 형제는 꽤 많은 비용을 내놔야 할 듯싶었다
어쨌거나 모든 계산이 끝나고 내일 새벽 발인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피곤한 어깨를 주무르는데
테이블에 턱을 괴고는 비스듬한 눈길로 약간의 시빗조가 담긴 어조로 시동생이 내게 말했다
형수님은 나한테 고마운 거 없으세요?
뭘... 요?
아니 애들밖에 갈 때마다 비행기 표에 가끔씩 등록금에 그렇게 보태 줬는데 한 번도
고맙단 말을 안 하세요
누가 뭘 보태줘요?
내 목소리가 커지고 눈은 더 커졌다
아니 ㅇㅇ이랑 ㅇㅇ이 유럽 가고 중국 갈 때, ㅇㅇ이 괌에 시험 보러 갈 때
비행기값 다 보태 줬잖아요
누구한테요????
저 한 테요????
엄마가 형네 힘들다고 해서 제가 그때마다 적게는 100에, 많게는 300을 줬어요 한다
형수 주라고
우리 네 식구가 용수철이 튀어 오르 듯 동시에 펄쩍 뛰었다
저는 요 단돈 만원 한 장 받은 적 없어요!!!!
아유 그럼 그 돈이 다 어디로 가요
빙글빙글 웃으며 턱을 괸 손을 풀며 엄마가 그 돈을 가지셨겠어요? 한다
딸아이가 그럼 엄마가 그 돈을 받고 입을 닦았다는 거예요 하자 나는 모르지
너네 나갈 때마다 비행기 값 보탰어한다
억장이 무너 진 듯 딸애가 작은 아빠 하늘이 보고 있어요 벌 받을 소리 하지 마세요
악을 쓰듯 말하자 그야 보면 알지 누가 벌을 받나
난 줬다 ㅇㅇ이 유럽 갈 땐 300이나 줬어하는데 그 입을 찢고 싶었다
똑똑히 알고 말하라고
작은 아이가 2~3년을 준비하며 공부를 해서 시험을 봤던 자격증을 결국에는 취득 못하고
마음을 못 잡고 허우적 대고 있을 때 큰 아이가 지인 소개로 베네치아에 있는 한인 민박의
매니저로 워홀을 주선해 주었다( 말이 매니저이지 예약 관리, 식사 준비. 숙소 못 찾는 여행객
데려오기 등등 청소와 빨래는 조선족이 하고 나머지는 다 아들 몫의 일이었다)
독일 프랑크프루트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는 비행기 표 값은 만만치 않았다
(카드 한도가 부족해 딸애 카드를 빌려 쓴 걸로 기억된다)
떠나기 일주일 전 화곡동에 가서 인사를 하고 왔다
남편이 용돈 안 주셔 하니 아들은 무 ~~ 슨 용돈 됐어요 했는데
사실 그 당시 도착해서 한 달은 써야 할 용돈을 얼마 못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들은 먹여주고 재워 주는데 뭘 하며 공항에서 헤어지며 걱정하는 내 등을 두드렸다
그때의 내 맘은 남들 눈엔 군대도 다녀온 다 큰 아들이지만 속상한 마음에 아들을 보내고 온
그날 저녁부터 동네 빙수가게에서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성수기 알바를 했다
다리가 붓고 저녁 내내 달달한 연유, 시럽 냄새에 속이 불편해 뭐 하나 넘기지를 못했다
청소와 뒷정리를 마치고 12시 넘어 집에 와서야 그 당시 유행하던 순하리 한 컵을 마시고 나서야
컵라면이라도 넘겼다
내가 나를 혹사하며 힘든 마음을 달래던 시절이었다
시동생의 빈정거리는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가졌던 의문이 스르르 풀렸다
시어머니의 부엌에는 늘 새로운 주방기기가 있었다
가격이 꽤 나가 보이는 것도 있었고, 언젠가는 도자기에 담긴 소금도 있었다
은퇴 한 천하장사가 선전하며 팔았다는 소금의 가격이 36만 원이었다
주먹보다 조금 큰 도자기에 담긴 열몇 번을 구운 소금이란다
당뇨가 있는 시어머니는 당뇨에 특효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내가 놀라며 효과는 있대요? 하자 아유 천하장사가 파는데 그럼 속이겠냐
당뇨와 소금물의 의학 관계가 떠오르진 않지만 어쩌겠는가
철석같이 믿고 그 비싼 가격을 이미 지불했거늘
또 다른 기억은 겨울에 가니 새 코트가 있었다
새로 사셨어요? 하니 동네 양장점에서 실크로 맞췄단다
아직 양장점이 있어요? 하니 있단다
동네 할머니 서넛이 놀러 가 본인만 제일 비싼 걸로 맞췄다고 의기양양했다
백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비싼대요 하자 얘는 젤 좋은 실크잖니 한다
겨울 코트면 울이 낫지 않아요 하니 난 이게 좋다 ㅎㅎㅎ
어머닌 돈도 많으세요 하자 막내가 주잖니
막내가 최고여 하며 흡족해하던 얼굴
알뜰히도 발라 먹었다
생선 대가리 바르 듯
시시비비를 가리려 해도 이미 치매를 앓고 있었기에 아무 소용없는 상황
독거노인 돌보는 심정으로 남편 손에 호두 넣어 볶은 멸치볶음, 들기름 발라 구운 김,
전복죽, 나박김치 등을 들려 보냈다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운 시어머니가 어디서 났냐고 묻더란다
남편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서 나를 가르키니 한마디 하더란다
그 아줌마한테 고맙다고 전하라고
결혼하고 40년 만에 처음 듣는 고맙단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