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누른 공깃밥 마음

참을 인이 세 번이면 공깃밥이 된다.

by Yunna

한국인들은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심성을 보고 나온 말이 아니라, 한국인들은 참 잘 참아서 나온 말이었다.

불합리해도, 화가 치밀어도, 눈물이 차올라도 어디선가 술을 퍼먹고, 자책을 할지언정

나를 그렇게 만든 나라, 회사, 상사, 고객, 가족에게 대놓고 시위를 하거나 따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맞는 말 같았다.

나조차도 남 탓보다 늘 나를 더 탓했다.

유전인지, 사회의 가스라이팅인지 잘 모르겠다 느낄 때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한국인의 착한 심성은 유전임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남매만 6명인 집안에 유일한 남자였던 할아버지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그 시절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의 며느리.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시어머니, 시누이들과 함께 살았다고 했다.

지금의 2030 세대들은 차라리 비혼을 택할 환경이었다.

할머니는 40년이 넘도록 혼자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매일 아침 시어머니, 남편, 시누이의 밥상을 차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상의 제사 음식을 만들고

또 치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억울해도, 불편해도, 힘들어도 말할 수 없었다.

화가 올라올 때마다 그저 꾹꾹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자식이 생기자 이제 자식을 위한 삶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러다 IMF가 왔고 말 그대로 돈 한 푼이 없었다고 한다.

남은 반찬을 또 새로 해 먹고, 돈을 꾸기도 하고,

모인 돈으로 장사도 하며 겨우 사셨다고 한다.

그렇게 또 할머니는 다시 분통 터지는 속을 꾹꾹 눌러 담으셨다.


삶을 거의 다 보내신 할머니는 이제야 인생을 살아가신다고 한다.

이제는 눌러 담던 공깃밥을 열어재낀다고 하신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젠 그 밥을 엎어버릴 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잘하셨다고 칭찬을 해드렸다.

할머니는 재밌으시다며 웃으셨다.


할머니는 쿨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젊은 사람 보면 연애도 실컷 하고, 놀러도 열심히 다니라고 말해주신다고 한다.

쿨한 할머니이신 것 인정한다.


한평생 참고 사신 분이셨지만 얼굴에 그늘은 전혀 없으셨다.

오히려 웃는 모습은 소녀 같으셨고,

요즘 유행하는 소식을 알려드릴 땐 아직도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보이셨다.

할머니의 선함이 모습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금 태어나셨다면 위대한 일을 하실 것 같았다.


우린 그들의 유산 위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참던 시간을 지금의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들어가지도 못할 공간까지 채워

뚜껑으로 덮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세월을 보상해 드릴 수도 없다.

억울할 법도 한데 할머니는 자식들이 좀 더 편히 살게 해주지 못한 것에 한이 남는다고 하신다.


"할머니 너무 착해요! 그 정도면 완전 열심히 사신거지 자식들한테 또 왜 미안해요!"

"그런가? ㅎㅎ 그래도 자식한테는 더 퍼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야"


부모 마음.

아직은 모르는 마음이지만 이상하게 그 찡한 마음이 동했다.

수많은 그 시절 국민들이 모두 재각각의 공깃밥을 눌러 담았던 건 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랑 덕분이다.

한국인들이 사랑꾼인 덕을 후손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스스로도 사랑해 주기를 바라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


작가의 이전글참지 마세요, 상대에게 양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