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보단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매우 사이가 좋은 손녀이다.
그래서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 노인과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나는 '이성적인 논리가 되는' 노인들과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일한 병원은 시골이었다.
그 말은 대부분의 젊은 보호자는 오기 힘들며,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흔하며,
사회생활보다 농사를 지은 경험이 더 많으며,
결론적으로 논리보단 고집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시골에는 수술과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시골에 종합병원이 생기면 왔던 환자를 계속 보게 된다.
이 부분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라포형성이 잘되고, 한 번 잘 파악하면 두 번째부턴 쉽다는 것.
단점은,
같은 고집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는 것.
고집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니
좋게 보면 좋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간과하는 부분은
여기가 '병원'이라는 점이다.
아파서 치료하려 온 것은 사실이나, 일단 세월에서 내가 느낀 경험이 일단 맞다.
넘어져서 골절이 의심되니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 CT를 찍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곧 내가 더 잘 안다며 골절은 아니라는 '고집'과 수십 번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의 일 차전은 주로 내가 한다.
처음 몇 달은 논리로 승부하려 했다.
검사 및 치료의 필요성, 중요성 등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이곳에서 논리는 집에 두고 와야 했다.
착한 표정과 말투로 전달하는 논리보다 거치로 큰 목소리로 한 만디 전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해야 한대요!"
"... 알아썽"
그렇게 나의 논리력 싸움은 끝났다.
역시 한국에서는 의사 선생님 한 마디가 더 끝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