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정신분열증, 알코올 의존증 등
병원은 내가 내 밑바닥, 진짜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만 하는 유일한 곳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믿음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경우(대표적으로 수혈 거부 등)를 모두 알아야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했던 질문도 반복해서 확인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본인이 맞는지 확인한다.
의료진의 기억력이 매우 짧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질문을 하다 보면 환자의 개인사정도 많이 듣게 된다.
슬프지만 '돈' 그리고 '가족'이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왜 알코올 의존증이 생겼는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왜 그렇게 예민하고 화가 많아졌는지
결국 돈, 그리고 가족이다.
(참고로 무조건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로
돈이 없다고 치료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복지 기준에 들어가면 소량의 금액으로(혹은 거의 무료로)
검사 및 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환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은
검사의 과정, 필요성 보다
"그래서 얼마내야 하는데?"
가 더 중요하다.
동의서를 작성할 때에도 얼마 드는지가 가장 강조된다.
의료를 행하는 입장에서
금액 측정은 나의 탓이 아닌데도
괜히 돈 뜯는 사채업자가 되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그러면 더 열심히 비용을 설명했겠지만)
내가 아무리 동의서를 많이 받아도 월급이 오르진 않는다.
아프면 서러운 두 번째 점은 바로 돈 때문에
가족들과도 마찰이 생긴다는 거다.
병원에서는 나이가 고령일 경우 더 젊은 보호자에게 상황설명을 한다.
나 살기도 바쁜 자녀 입장에서 어머니의 혹은 아버지의 병원비를 부담하기란
참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다.
하나만 신경 쓰기도 힘든 세상,
나 같아도 간호사가 매일 전화 오면 분노장애가 생길 것 같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당사자가 더 잘 느낀다.
그래서 몇몇 할머니들은 무조건적으로 치료를 거부한다.
당장 누구한테 답답함을 토로할지 모르니
일단 앞에 보이는 어린 직원에게 화를 내고 본다.
별로 아프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저렴한 방법은 없는 거 맞냐며
날카롭게 말씀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한 문장이다.
"나도 치료받고 싶은데, 우리 아들도 여유가 없어요."
뻔히 보이는 현실에도
'그래도 하셔야 돼요...'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때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다.
딱딱한 플라스틱 척추 보조기 하나로
며칠을 토론하고 화내던 우리 할머니...
결국 비용을 지불하고 착용하시고는 한 마디 하셨다.
"확실히 통증이 덜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