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May 20. 2022

두 우승자들 _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8

조성진(1994~ )이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게 2015년이었으니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6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그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한국인 최초였으며 아시아인으로서도 세 번째(1980년 베트남 당 타이손 우승, 2000년 중국 리원디 우승)였던 엄청난 성과였다.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의 제18회 대회는 2020년에 열려야 했지만 코로나로 연기되어 6년 만인 2021년개최되었다. 이번 대회 우승자는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캐나다인 브루스 류 Bruce Liu (1997~ )다. 이름을 듣는 순간 홍콩 영화배우 브루스 리(이소룡 1940~1973)가 떠올랐었는데 실제 그 배우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브루스 류는 재미난 청년인 듯하다. 수영, 테니스, 카트 레이싱 등 무려 15개의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는 '특기가 취미 생활'인 청년이다. 그는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평생 동안 즐겁게 연주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를 직업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 취미 생활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단 말인가? 말이 그렇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는가.  



쇼팽 콩쿠르는 10월 17일(쇼팽의 사망일)을 전후로 그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데 이번 대회 결승은 10월 21일이었다. 그런데 콩쿠르 우승자가 정해지기도 한참 전인 9월 초에 예술의 전당이 '서울시향 쇼팽 콩쿠르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콩쿠르 우승자가 참가하는 공연의 티켓을 오픈했다. 예매에 성공한 티켓은 3장, 각자 따로따로 앉아야 하는 자리지만 그나마도 손에 넣었다는 게 어딘가?


아내는 조성진을 좋아한다.

"조성진 피아노는 정확하고 명징하지만 솔기 하나 없는 옷처럼 우아하고 깊어. 토끼 이(齒)도 너무 귀엽지 않아? 말하는 건 또 얼마나 진중한지." 라며 어쩔 줄 몰라하곤 했다.


내가 보기에는 '피아노를 잘 치니까 다 좋은 것' 같았다. 그런 아내가 이번 브루스 류 공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눈치였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따끈따끈한 연주라는 기대감도 있었겠지만, 내심 조성진이 더 잘 칠 거라는 믿음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던 게 아니었을까? 연주 레퍼토리는 당연히 콩쿠르 결선 곡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표는 딸내미가 예매해 주었는데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갔다.


쇼팽 콩쿠르 17회 우승자 조성진(왼쪽)과 18회 우승자 브루스 류의 콩쿠르 결선 실황 앨범 표지(사진출처_www.yes24.com)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쇼팽 Frederic Chopin (폴란드 1810~1849)은 1810년 바르샤바 근처의 젤라조바 볼라에서 폴란드인 어머니와 바르샤바 육군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쇼팽은 약 200여 피아노곡을 남겼는데 그중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둘 뿐이다. 1830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한 쇼팽은 고향을 떠나 빈으로 가기 바로 전인 10월에 바르샤바 고별 연주회에서  직접 초연하였다. 


이 곡에는 스무 살 청년의 부푼 꿈과 더불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우울한 심정이 함께 깃들어 있다.




쇼팽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하던 1830년 당시 폴란드는 독립혁명으로 어수선한 격동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실 폴란드는 쇼팽이 태어나기도 전인 1795년 프로이센(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3개 국의 분할 지배를 받고 있어서 아예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였다.


1830년 러시아의 폭군 총독 콘스탄틴 대공(러시아 황제 동생)이 폴란드군 사령관에 오르자 사관생도들이 11월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른바 '11월의 밤'이라고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가 가담한 이 독립혁명은 결국 러시아 군대에 진압되었고 이후 폴란드는 모든 자치권을 잃고 러시아 제국에 병합(1831년)되었다.


이때 오스트리아 빈에 머무르고 있던 쇼팽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독립혁명에 동참하려 했지만 친구 티투스가 "너는 남아서 네가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귀국을 만류했다. 쇼팽은 그대로 오스트리아에 남아 공부와 연주를 계속하려 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어떤 나라던가? 러시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지배하고 있던 나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폴란드인들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결국 쇼팽은 빈을 떠나 폴란드 망명자들의 활동 중심지인 파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빈에서 탈출하다시피 빠져나와 어렵사리 파리에 도착한 쇼팽은 바르샤바가 러시아 군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분개한 쇼팽은 자신의 심정을 반영한 에튀드 Op10. No 12를 작곡하여 발표했는데, 매우 격정적이어서 "혁명"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타국 프랑스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쇼팽, 그는 몇 번이고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러시아의 방해를 받아 번번이 실패했다.


쇼팽이 폴란드 사람들에게 남긴 음악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민족정신이었다.


1849년 쇼팽은 폐결핵으로 죽기 전 '육신은 파리에서 죽지만 마음만은 폴란드와 함께하고 싶다'며 자신의 심장만이라도 바르샤바로 옮겨 줄 것을 누나에게 유언했고 그 유언은 러시아 몰래 실행되었다.


러시아의 불허로 시신조차도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비운의 쇼팽.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의 몸과 마음은 따로따로 묻혀있다. 몸은 파리의 라셰즈 공동묘지에, 마음(심장)은 폴란드인들 정신적 고향이자 저항의 역사인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Holy Cross Church)에 안치되어 있는 것이다.


"쇼팽의 심장 여기에 잠들다."_쇼팽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출처_http://blog.naver.com/zooolo/221376822947)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기존의 명반으로 듣는 것도 좋지만, 최근 콩쿠르에서 우승한 두 젊은이들의 파이널 라운드 실황으로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비르투오소의 명인기적(名人技的)인 감동은 적을지 몰라도 기대와 긴장감 가득한 현장의 분위기와 젊은 연주자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2015년 제17회 쇼팽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에서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대회 파이널 라운드가 아니라, 마치 우승하고 난 뒤 갈라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듯 여유 있는 모습으로 연주하는 조성진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https://youtu.be/614oSsDS734

2015년 제17회 쇼팽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에서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021년 제18회 쇼팽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에서 브루스 류가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스타인웨이나 야마하가 아닌 "FAZIOLI"(새롭게 떠오르는 이탈리아산 피아노)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피아노로 연주하는 브루스 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선명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3악장 피날레가 매우 인상적이다.

https://youtu.be/UcOjKXIR8Iw

 2021년 제18회 쇼팽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에서 브루스 류가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Allegro Maestoso (빠르고 장엄하게) (0:34~ ) *모든 연주 시간은 조성진 연주 영상 기준임.

비장한 관현악 서주가 길게 1, 2 주제를 연주하고 피아노는 연주 시작 후 4분이 지나서야 들어온다. 특히 서주부 2 주제(1:25~)와 피아노 연주 2 주제(5:30~) 부분이 쇼팽다운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우리의 마음을 끈다. 스무 살 청춘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꿈과 애환을 우아하고도 슬프게 나타낸다.


2악장 Romance, Larghetto (로망스, 느린 속도로) (21:22~)

쇼팽은 친구 티투스 보이치에코브스키(Tytus Woyciechowski 1808~1879)에게 직접 2악장의 작곡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2악장에서 강렬함을 추구하지 않았어. 로맨틱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약간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많은 추억들을 되살리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지. 아름다운 봄밤의 어스름 달빛처럼 말이야.

즉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는 '녹턴'같은 느낌의 악장이다. 고향을 떠나는 스무 살 쇼팽의 심정에 공감하며 들어볼 악장이다.


3악장 Rondo, Vivace (론도, 생기 있고 빠르게) (30:42~)

화려함이 넘치는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악장이다. 오케스트라의 짧은 도입부가 끝나고 피아노가 연주하는 주제(30:59~)가 3악장 내내 반복되니 그 멜로디만 기억하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화하듯 사이좋게 악장을 끌고 나간다. 종지부에서는 건반을 친다기보다는 구슬이 구르는 듯한 빠른 진행과 강렬한 에너지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_네이버 이미지


참고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더 클래식 둘, 문학수]

          [클래식 수업 5, 민은기]

          [위키 백과_폴란드의 역사]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dongi0508/221707487513]

매거진의 이전글 에로틱하거나 애도하거나 _ 말러 '아다지에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