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May 29. 2023

협주곡의 신세계 _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39

'보스턴 레드 삭스(Boston Red Sox)', 알다시피 미국의 프로야구팀 이름이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보스턴 빨간 양말'. 1901년에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을 연고지로 창단했다니 123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팀이다.


양말을 이름으로 하는 또 하나의  '시카고 화이트 삭스(Chicago White Sox)'도 있다.


팀 이름이 빨간 양말(Red Sox) 또는 흰 양말(White Sox)이라니, 우리나라 야구팀들이 라이온스나 타이거즈 또는 이글스 등 용맹과 승리를 상징하는 동물을 이름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재미있다. 

 

하긴 세계 최초의 프로야구팀이자 메이저리그 원년 팀의 이름은 1869년에 프로 팀으로 정식 출범한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였다고 하니 미국인들의 양말(스타킹)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듯하다.

 


며칠 전 아트센터인천에서 첼리스트 한재민이 연주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들었다. 구스타보 히메노가 지휘하는 룩셈부르크 심포니와의 협연이었다.


박수 속에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악장이 입장을 마쳤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드디어 지휘자와 한재민의 입장. 천재적 재능을 지녔고 낙천적 성격이어서 무대의 긴장감을 즐긴다는 한재민이지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나이 겨우 18살이다.


내 자리는 연주자의 숨소리조차 들릴 만큼 무대 가까이 있는 곳이었다. 한재민이 자리에 앉아 의자 높이를 조정하고 자세를 잡는데, 그의 양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까만 구두와 양복바지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양말은 두툼한  삭스(Red Sox)였다.

빨간 양말을 상징처럼 신고 연주하는 청년 첼리스트 한재민, 마음의 안정을 준다던가 하는 무슨 징크스 같은 것이 있었나?


상징이든 징크스든, 빨간 양말 하나에 그냥 기분이 좋아다. 귀로는 박력 있고 서정적인 첼로 소리를 담고 눈으로는 빨간 양말과 함께 현란한 손놀림을 보느라 40여 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갔다.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  위해 자리에 앉는 한재민_빨간 양말이 살짝 보인다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연주를 끝내고 인사하는 첼리스트 한재민과 룩셈부르크 심포니 지휘자 구스타보 히메노



드보르작 Antonin Dvorak(체코 1841~1904)이 뉴욕에서 새로 설립된 '내셔널 음악원' 원장 자리를 제의받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1892년 그의 나이 51살 때였다. 그는 음악원장에 부임한 뒤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등 음악을 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니라고 하겠지만,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미국 1929~1968) 목사가 인종 차별에 저항하며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이라는 연설을 한 게 1963년이었고, 이를 계기로 인종 차별주의자에게 암살당한 게 1968년이다.(글 맨 아래 참조)


1900년도 안 되었던 시절에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음악원 문호를 개방한 게 얼마나 파격적이고 대담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드보르작은 음악원에 들어온 다양한 학생들로부터 흑인 영가나 원주민 민요 등의 미국 토착 전통 음악을 흡수했다고 한다.


그가 미국에 머문 기간은 1895년 4월까지로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첼로 협주곡>, <현악 4중주 아메리카> 등 보르작의 대표작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평생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고국 보헤미아의 자연과 서정 그리고 차별 없이 음악을 흡수하려는 그의 열린 생각이 빚어낸 걸작들이다.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드보르작이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고국의 향토색 짙은 선율과 흑인 영가의 멜로디를 사용한 망향의 노래라면, 역시 미국 체류시기에 작곡한 <첼로 협주곡>도 보헤미아적 정서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격정적으로 그려낸 또 하나의 '신세계로부터'이다.


협주곡이지만 웅장함은 교향곡에 뒤지지 않고 그 서정성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이 작품에 대한 거장 브람스 Brahms(독일 1833~1897)의 평이 유명하다. 드보르작의 8년 선배이자 우정을 나눈 멘토였으며 영감을 준 스승이기도 했던 그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처음 듣고 

"이런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만약 알았다면 내가 먼저 작곡했을 텐데~~"

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야노스 슈타커 Janos Starker(헝가리, 1924~2013)의 연주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생기 넘치는 당당함이 돋보이는 명연 중의 명연이다.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생기 넘치는 당당함이 돋보이는 명연 중의 명연인 야노스 슈타커의 음반



'첼로의 프린스', '첼로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 Daniil Shafran(구 소련, 1923~1997)의 연주는 서정성이 넘친다.

로스트로포비치와 쌍벽을 이루었던 구소련의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의 음반



악장 해설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미남 첼리스트인 고티에 카퓌송 Gautier Capucon(프랑스, 1981~)의 연주로 들어보자.


카퓌송의 열정과 기교, 그리고 파보 예르비 Paavo Jarvi(에스토니아, 1962~)가 지휘하는 파리 관현악단의 힘과 우아함이 잘 조화된 훌륭한 연주다.


https://youtu.be/MrjeyNVNKb4

카퓌송의 첼로와 파보 예르비 지휘하는 파리 관현악단의 협연


1악장 Allegro(빠르게)

음악이 시작하면 클라리넷과 파곳이 저음역의 현을 배경으로 묵직하고 조용히 주제를 제시한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이어받고 현악기와 관악기들이 합세하면서 웅장한 사운드를 만든다. 하지만 주인공 첼로는 진득하게 기다리며 힘을 비축해야 한다. 아직도 첼로가 나오기 전, 아련한 고향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호른의 제2 주제(2:20~)가 펼쳐진다.


드디어 등장하는 첼로는 충분히 기다렸다는 듯 힘차고 당당하게 출발한다. 특히 제2 주제를 연주하는(6:10~, 12:20~) 첼로의 연주는 향수를 자극한다. 마지막은 마치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트럼펫 팡파르가 희망적이고 웅장하다.


2악장 Adagio ma non troppo(느리지만 지나치지 않게)

2악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젊은 시절 드보르작은 요세피나라는 여인을 열렬히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귀족과 결혼했고 드보르작은 그녀의 동생 안나와 결혼했다. 결국 첫사랑 요세피나는 처형이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중 요세피나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요세피나의 회복을 바라며 그녀가 좋아했던 자신의 가곡 <나를 혼자 내버려 두세요> 선율(19:14~)을 2악장에 넣었다. 드보르작의 간절한 마음을 듣는 악장이다.


3악장 Allegro moderato(적당히 빠르게)

행진곡 풍의 리듬으로 시작하는 경쾌하고 빠른 악장이다. 중반 이후 부분에 나오는 바이올린과 첼로 독주의 2중주 부분(36:15~)이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바이이올린이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재민의 연주에서도 온몸으로 연주하며 협연자와 합을 맞추는 악장의 기교가 눈부셨었다.)


드보르작은 이 악장의 마지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피날레는 마치 한숨처럼 점차 사라지면서 끝나야 합니다. 앞선 1, 2악장을 회상하며 첼로 독주는 피아니시모로 죽었다가 다시 부풀어 오르고, 마지막 힘은 오케스트라에게 넘겨 격렬하게 마무리합니다. _ 드보르작



참고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 최은규]

          [더 클래식 둘, 문학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1963년 8월 28일 노예 해방 선언 100 주년을 맞아 열린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링컨 기념관 광장에 모인 25만여 명의 군중 앞에서 한 유명한 연설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유명한 이 연설은 미국의 인권 운동사는 물론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이다.


나는 오늘 나의 친구인 여러분께 이 순간의 어려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미국인의 가슴에 깊이 뿌리 박힌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참뜻을 실행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언덕 위에서 예전에 노예였던 사람들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미시시피 주(州)조차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아이들도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_ [꼭 외워야 할 영어 명문 BEST 20, 김영숙 저]
매거진의 이전글 파블로 카잘스 _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