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랄 친구들의 해후
돌무리
찐득찐득한 장마도 막바지에 다다른 7월 말 어느 날 부산에 사는 고향친구 똥기오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향에서 부랄 친구들 한번 만나자는 거였다. 그렇잖아도 너무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들이라 거의 잊고 살아왔던 터에 반가운 마음에 얼른 그러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유학을 한답시고 대구로 떠난 후 그 길로 객지로 떠돌아다닌 지 어언 반백년이 훨씬 넘게 훌러 버리고 말았다. 오랜 세월 묻어두고 마음으로만 그리워했던 첫사랑을 만나러 가듯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차에 몸을 싣고 포항역에 도착하니 부산. 대구. 포항에서 온 친구들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있는 까까머리가 교회당집 지우라고 했다. 백발머리에 까무잡잡한 친구가 "나 무호야" 하고 손을 내민다. 우락부락하여 소장수처럼 생긴 놈이 툭하면 씨름한판 붙자던 희원이란다. 이들은 60여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얼굴마다 추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판이라면 천재라던 차돌이 용섭이도 반가워서 폴짝폴짝 뛰었고 늘 머리에 쇠버짐을 얹고 살던 뺑용이도 싱긋이 웃으며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었다.
유일하게 아직도 고향을 꾸준히 지키고 있는 왕년의 해꼽왕 치환이도 합류했다. 그는 어쩌다가 황반변성에 걸려 마누라차를 얻어 타고 달려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했다.
그 길로 우리는 칠포횟집으로 달렸다. 스무남명 쯤이나 되던 친구들 중에서 다들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떠나가고 그나마 남은 늦장들은 거의 다 모인 셈이다.
모처럼 자연산 회를 곁들어 한잔 걸치며 추억예기에 꽃을 피웠다. 닭서리 하던 이튿날 깐깐하기로 소문난 천둥영감님이 뒷짐 지고 구시렁구시렁 닭 찾아다니던 흉내 내는 지우 때문에 배꼽을 잡았고, 뺑용이가 소 먹이러 가서 양지바른 묘비 앞에 나란히 누워 형들 따라 핸드플레이 흉내 냈던 예기를 능청스럽게 읊어댈 때는 모두가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까치곡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목에 벼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걸 보노라니 미꾸라지 잡던 생각이 떠올랐다. 도랑 가장자리 풀숲에 소쿠리를 대고 발로 쿵쿵 꿀려 소쿠리를 들었을 때 팔뚝만 한 뱀이 담겨있어 기겁을 하고 논바닥에 냅다 던져버렸던 것이다. 논바닥에서 꾸불텅거리는 놈을 자세히 보니 귀가 달린 뱀장어라 그놈을 잡겠다고 무논 바닥에서 한바탕 씨름을 했던 기억이 났다. 산밑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내 고향 고현, 한 폭의 그림이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괜히 가슴이 설렌다. 신선한 공기가 코를 후빈다. 냄새부터가 다르다.
최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지었다는 마을회관을 들러봤다. 허연 백발의 할머니들이 서너 명 십 원짜리 고스톱판을 벌리고 있다가 맨발로 나와 맞아 주었다.
마냥 수줍음 타는 새댁이었던 그들이었는데 어느새 구순의 할멈이 되어 있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애환들을 잠시나마 잊은 채 서로 손잡고 끌어안았다.
그 길로 마을위쪽 이장골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낏자루 들고 석 배기 캐던 새박나무골, 토끼 잡으러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꾹골, 소등 타고 소 먹이러 다니던 절골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발가벗고 멱감고 놀던 이장골못, 심심하면 개헤엄으로 가로지르던 곳이다. 두어 마장이나 됨직한 거리를 가로질러 거뜬히 헤엄쳐 건넜으니 대단한 악동들이었음이 틀림없다.
이어, 단골소풍 장소였던 내연산 보경사로 향했다. 시원한 계곡물은 여전히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내친김에 발가벗고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찬기운이 감도는 골짜기의 연산장에 큼지막한 방하나를 잡아 밤새는 줄 모르고 추억예기에 꽃을 피웠다.
덕분에 잠은 설쳤지만 내연산 산나물 반찬으로 아침을 때우고 양지바위 해변으로 향했다.
꽁당 보리밥에 고추장 한 종지 담고 종종걸음으로 해수욕 다니던 곳이다.
성게. 군수. 따개비등을 잡고 큰 바위에서 겁 없이 다이빙시합 하다가 머리와 이마에 주먹만 한 혹을 몇 개씩이나 만들어 며칠 동안 된장을 바르고 다녀야만 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어릴 때 다녔던 초 중학교를 들러봤다. 보리이삭 주워 모아 지은 정든 보리삭 교실은 한갓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 삑 둘러서서 고추들 내놓고 소변보던 노천 사각오줌통, 그걸 뛰어넘기 시합 하다가 한길쯤이나 되는 그곳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담임인 예쁜 김분생 선생님이 건져다 씻겨주던 버드나무 연못도, 그 오줌통도 이제는 보이질 않았다. 그때 모처럼 입고 갔던 새로 산 솨지양복은 오줌에 흠뻑 적셔져 한 짐이나 되었는데, 어기적 거리며 10리 길을 걸어 집에 왔더니 사타구니가 긁혀 붉은 꽃밭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보시고 기겁을 하시고 생두부를 담아와서 구데기 버글거리는 칙간에 데려가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래야 액땜을 한다며 기어이 두부한모를 구데기 보는 앞에서 다 먹어 치워야만 했다.
누군가 녹슨 수류탄을 주워서 가지고 놀다가 터지는 바람에 여럿이 병원에 실려갔던 꿈동산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잡초만 무성하다.
양초로 문질러 반질 반질한 마룻바닥에서 미끄럼 타며 여학생 머리끄덩이 잡던 교실에는 장난감 같은 책상 몇 개가 덩그마니 놓여있을 뿐이어서 왠지 초라해 보였고 서글픔마저 들었다. 한땐 그래도 반마다 정원이 차고 넘쳐 6,70명이나 어울려 북적거렸던 곳인데...
털털거리는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연막탄을 터트린 것처럼 먼지가 자욱했던 자갈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비둘기집을 찾아서 새끼랑 알을 훔치던 추억의 강솔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띄엄띄엄 농공단지로 조성되어 공장인지 창고인지 아리송한 모습들로 바뀌어 있었다.
9년 동안 10리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시락 반찬통 딸까닥 거리는 검은보 책가방 어깨에 동여 메고 뛰어다녔던 정든 길이다.
한겨울 꽁꽁 언발을 녹이려고 이불속 아랫목에 넣으면 시리고 아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응정을 부리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만져주시던 손길이 마냥 그립다.
가끔씩 추운 날은 버스 타고 오라고 쥐어주던 동전 몇 잎은 정류소 앞에서 맘씨 좋은 아줌마가 구워파는 김이 술술 나는 붕어빵 사 먹어 버리고 띄엄띄엄 다니던 낡은 공짜버스 한번 타보겠다고 차장누나한테 애걸복걸해 보건만 매정한 차장누나는 본체만체 "오라이"를 외치고 만다.
책보따리 던져놓고 산길에서 딱지 치며 놀다가 마침 장에 가시던 어머니께 들켜 한귀가 잡힌 체 끌려가 지각하고 혼났던 일, 수박 참외서리 하다가 들켜 교무실에 불려 가서 하루 종일 의자 들고 벌서던일, 모두가 그리운 추억 들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꿈에서나 등장했던 고향땅과 부랄 친구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값진 만남이었다.
모처럼 그리움 되새겨 밟고 고향을 뒤로하면서,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부랄 친구들 모두의 눈가에는 어느새 흐릿한 이슬들이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