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위의 그림도 지면 위에 활자들도 평면 위에 있다. 바라보는 구름도 하늘이라는 평면 위에 자리 잡은 것으로 인식된다. 평면은 지루함이라는 생각에 머문다. 평면 같은 일상 또한 지루하다. 그런데 그 지루함과 나른함을 잊게 해주는 것들이 갑자기 입체로 떠오른다.
책상 위에 평면도를 넘겨본다. 주거용 건물이 올라가고 크기에 맞게 층과 방이 분할된다. 공간 위에 분할되고 나누어진 벽을 기준으로 생활의 편리를 위한 가구들이 설계된다. 설계된 도면에 따라 주방가구를 비롯해 붙박이장, 신발장이 입체적으로 세워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점을 잡아야 한다.
기준점에도 몇 가지가 있다. 벽과 창문, 그리고 수도 위치와 배수구 위치, 후드위치 등이 있다.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사이에 장들을 배열한다. 바닥과 천장의 높이와 싱크대 벽면 타일의 높이, 사용하기 편한 하부장의 높이와 쿡탑을 사용하면서 후드가 냄새를 흡입할 적당한 높이가 정해진다. 각각의 구조와 위치에 따라 평면도에 변화된 도면으로 그려져 있다. 이제부터 또 다른 업무의 진행을 위해 속도를 올려야 한다.
하루를 쉼 없이 평면을 받아 들고 입체를 세우기 위해 각 파트를 담당해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정해진 자재와 부속품과 제품의 세밀한 분류가 이어진다.
숨겨진 입체를 찾아낸다. 불안정하거나 오류도 발견된다. 그러나 대부분 상세한 설계에 따르기에 문제 되는 것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하나하나 평면이 입체로 만들어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자들에 의해 입체로 세워지면서 가치 있는 제품으로 완성이 된다.
숙달된 업무와 기술이 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내게도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한 수많은 하루가 지나갔다. 강산이 두 번의 변화를 갖는 시간이지만, 그것도 지금은 너무 빠른 변화에 그 변화조차 둔감해져 가고 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문제점을 개선해 가며 궤도에 올라서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바닥과 천장을 이어주는 입체바닥과 천장을 이어주는 입체의 가구들을 열어본다.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채워져 갈 것을 예상한다.
문득 하루의 업무에 몰입하며 사는 일이라는 것이 평면 위에 세워진 입체들을 눈으로 손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적용시키며 조금씩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캔버스 위에 호박 그림을 그린다. 표현하는 색의 농도에 따라 어두운 곳은 좀 더 깊이 있게 그린다. 바탕은 짙은 어둠을 칠해서 그림이 캔버스 위에서 떠오르게 한다. 사물과 사물 간에 자연스럽게 경계를 풀어준다. 그렇게 표현하다 보면 바탕은 깊이감이 있고 사물은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그림자를 표현한다. 찌그러지고 굴곡의 모양으로 원하는 호박 위에 다른 호박이 겹쳐진다. 풍성한 호박그림을 이어서 그려나간다. 평면의 캔버스 위에 입체의 사물을 그려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나는 보이는 것을 따라 그리고 있는 평범한 작업자일 뿐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떠올린다. 그림 속의 여인들은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다. 몸이 틀어져 있기도 하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도 한다.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벗어나 배경이나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뒤섞여 있다. 기하학적 형태로 분해해 입체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본 것을 표현하고 있다.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변화는 것을 입체로 표현했음을 배운다. 앞선 거장의 천재적인 화풍을 모방해 보고 싶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입체적이어야 한다. 너무 담담하거나 변화 없이 무미건조하기만 하다면 본인도 보는 이들도 지루하다. 캔버스 위에 평면으로 그려진 그림이 어찌 입체적으로 다가오는지. 한 줄의 시가 어찌 가슴으로 입체적인 음각을 만드는지. 글 또한 평면 위에 쓰여졌다. 하지만 읽어 나가다 보면, 입체의 모습을 들어내어 가는지 알게 되는 것도 그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때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물과 사물에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삶도 내면의 드러나는 마음으로 또 다른 입체를 돋보이게 하고 풍성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삶도 누군가로부터 받아 든 평면의 설계도에 의해 입체로 진행되는 과정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과 시간 위를 걸으며 그 위에 집을 세우고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정면과 후면과 측면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며 창조의 수많은 작업으로 채워나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도 평면과 입체가 공존하는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