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계산 값

by 최희숙

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활동이 필요했던 사무직은 나의 오래된 명함이다.
상업고등학교의 진학이 그 시작이었다. 상업학교 입학은 어릴 때의 내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였나, 공부보다는 만화를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공상에 빠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주산, 부기, 타자는 학교에서 배워 익숙해져야 하는 기능이었다. 도무지 그런 과목에는 흥미가 없었다. 연습 부족으로 인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졸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턱걸이하듯 간신히 취득했다.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고 해서 계산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다.
첫 직장부터 주판은 서랍 깊숙이 저장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신 책상 한편을 커다란 전자계산기가 차지했다. 계산기는 다섯 손가락이 각자 지정한 계산 값을 찾아가며 점점 속도를 찾아갔다. 사칙연산四則演算에 익숙해졌고, 계산은 주 업무가 되었다. 지점에서 올라오는 매출전표와 일계표, 월계표를 집계해 표를 만들고, 부가세신고를 위한 세금계산서를 집계했다.
계산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다. 정확한 숫자로서의 데이터를 기록하는 게 필수였다. 기본적인 데이터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전 부서의 업무 파악은 물론, 다른 부수적인 업무도 정확하게 확인해야 했다. 계산기로 얻은 데이터를 장부에 일일이 펜으로 기록했다. 혹여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정확한 수치를 찾을 수 없었다. 기록하고 집계표와 도표도 만들었다. 계산기는 업무의 중요한 파트너였다.
악기를 배워 본 적은 없었다. 한번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피아노였다. 그것은 길고 가는 손가락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였던가. 친구들로부터 피아노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들은 일이 있고부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배우고 싶다는 말은 언감생심이었다. 부모님의 마음만 아프게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악기를 배워보려던 마음도 잊고 지냈다. 피아노 건반 대신 계산기의 키보드를 수도 없이 두드렸다.
이젠 컴퓨터로 업무를 한다. 전에는 지금보다 몇 배의 시간을 업무에 집중해야 했으나, 요즘은 주로 확인하는 것이 주 업무다.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영업실적을 집계한다. 하루와 매달의 실적이 데이터로 쌓이면, 일 년의 영업실적을 마감한다. 연도별로 데이터도 서로 비교한다. 그러나 여전히 전자계산기로 일련의 합이 정확한지 검산檢算을 거치니 아이러니다.
가끔은 숫자의 조합을 머릿속에서 암산暗算할 때가 있다. 그것은 업무 중에 계산해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진리를 갖고 살았다. 그러나 삶에서의 계산 값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정작 계산이 필요한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계산기보다는 주먹구구식 암산으로 대처하곤 한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계산 방식을 몰라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지한다. 그에 따른 계산은 하지 않는다. 그 순간마다 내게 분명한 계산 값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는 있다.
컴퓨터와 전자계산기를 바라본다. 출근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시작 버튼을 누른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습관이다. 컴퓨터는 업그레이드된 기능으로 몇 번 교체되었다. 업무의 필수품이 된 컴퓨터는 계산기의 기능도 완벽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지문으로 숫자마저 희미해진 전자계산기를 저버릴 수 없다.
계산기의 나이를 가늠해 본다면 이십 년이 넘지 싶다. 숫자가 뜨는 액정 아래에 나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입사 초년생에서 중간 간부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 나와한 몸이었다. 익숙한 손가락의 움직임은 습관처럼 숫자의 리듬을 찾아간다.
언젠가 문득 계산기의 연산기호 판에 물음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감탄사 같은 문장부호나 특수문자가 없는 계산기의 자판처럼 삶은 미완성의 수식일지 모른다. 삶에서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투자와 훈련이 필요하다. 복잡한 문제를 적절한 연산기호를 사용해 쉽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은 내 안에 쌓인 경험과 지식 때문이다. 때로는 피로나 권태감을 동반한 갈등으로 능률이 떨어지기도 한다. 지친 정신과 육체를 활력 있게 하는 것이 음악임을 알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로 가득한 화면을 바라보며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만고의 진리를 떠올린다.
내게 있어 컴퓨터와 전자계산기는 삶을 연주하는 익숙한 악기다. 언제부터인가 숫자들이 음표가 되고, 소리는 저절로 리듬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떤 악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인지 모른다. 스스로 연주자가 되어 마법 같은 화음과 리듬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떤 악기라도 좋지 않으랴. 그들이 내 안에 오선지를 그리며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넨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라는 일상에 소중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린다. 삶은 모서리를 맞춰가며 무너지지 않는 공식을 만들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책상에 놓인 데이터는 선율 없는 타악기 악보다. 그것만으로는 공연장에 설 수 없다. 리듬을 맞춰가는 내 손길에 따라 악보는 변주된다. 악보가 연주하는 선율은 권태와 나른함을 주기도 한다. 내가 계산하고 있는 것이 시간으로 채워지는 삶인지, 아니면 그저 숫자일 뿐인지 혼돈스럽다. 내게 당면한 삶의 문제는 아직도 계산 값을 내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인 업무 시작 시간이다. 사무실 저마다의 계산 값을 얻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연주가 퍼져 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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