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송악산은 여인의 젖가슴같이 봉긋 솟아 있었다. 제주 남서쪽 바다와 맞닿은 이 산의 자락을 걷다 보면, 쇄설층이 쌓여 만들어진 해안 절벽 길이 주름 잡힌 한복 치마단 같이 물결친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의 나무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지만, '헉헉' 대는 숨소리는 빨라지고 있었다. '쌩'하니 찬바람이 등산 모자를 뒤집을 듯 불어대자, 아내의 야윈 몸뚱이가 휘청한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아내에게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전망대라고 달래며, 한 손으로 아내의 앙상한 엉덩이를 밀어주었다. 운동을 안 하니 궁둥이에 근육이 다 빠져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핀잔을 주자, 밀기나 제대로 하라고 아내가 타박한다.
어느새 해안 절벽 전망대에 이르렀다. 가장 높은 전망대라 그런지, 휘몰아치는 바람이 온몸을 두들겨댄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이끌어 관광안내판 앞에 서게 한 후 내 손가락을 잡아 풍경 사진을 짚어가며, 왼쪽 저 멀리에 있는 것이 형제섬이고, 가운데 둥실 떠 있는 것이 가파도, 오른쪽에서 가물거리는 것이 마라도라고 설명해 준다. 풍경 설명을 마친 아내가 시월 초인데 왜 이렇게 춥냐며 구시렁거린다. 달콤한 초콜릿과 따스한 커피 한 잔을 내미니, 지금껏 제주도에 혼자라도 보낸 보람이 있다며 아내가 칭찬 아닌 칭찬을 한다. 거센 찬바람에 한기가 등골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바람막이 대용으로 준비한 판초 우의를 꺼내 그녀에게 입혔다. 아내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윤슬로 반짝이는 금색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펄럭대는 판초 우의를 입은 깡마른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닷가 절벽 위에서 바람에 휘청대는 억새 같았다.
바람이 춥다며 아내가 내려가자고 했다. 길게 내리뻗은 전망대 계단 앞에서 걷는데, 불편하다고 아내가 판초 우의를 벗었다. 감기 걸린다고 입으라고 해도 불편해서 싫다고 한다. 한숨을 쉬며 판초 우의를 둘둘 말아 배낭에 넣으려 하자, 아내가 다시 꺼내려면 불편하니 접어서 넣으라고 한다. 추우니 빨리 가자고 말하며 대충 말아 넣는데, 내 손에서 판초 우의를 빼앗아 아내가 접기 시작한다. '으이그' 하며 바람에 날리는 판초 우의 한쪽을 잡아 주었다. 우리 부부는 항상 이 모양이다. 꼼꼼하고 깔끔한 여자,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성실을 다하는 그녀의 이런 성향과 반대인 나는, 이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언제나처럼 아옹다옹하며 지내던 1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늦게 들어온 내게 아내가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지를 내밀었다. 위암 의심 소견이었다. 여러 검사 결과를 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급하게 쫓아다니며 진료를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진료 의견은 모두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여름 땡볕 아래 내 손을 잡고 가는 아내의 손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실명한 남편 대신 돈을 벌어야 했고, 갓난아이도 키워야 했으며, 남편의 학위과정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애를 쓰던 그녀가 위암이었다. 내가 아플 때마다 밤새워 돌봐주던 아내였지만, 정작 수술 입원 기간 동안 눈이 안 보이는 나는 아내를 간병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시절이라 면회도 안 되던 그때, 만날 수 없는 그녀의 병세를 걱정하며 하루종일 병원 로비를 서성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올레 10코스는 송악산 해안 절벽 길을 따라 섯알오름 쪽으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코스에서 벗어나 송악산 분화구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거센 찬바람에 아내의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용의 등줄기 같은 분화구 둘레길의 양쪽 가파른 경사면에 소나무가 가득하여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었다. 분화구 안쪽 가을 들판에 말들이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었고, 어미 말 주변으로 망아지가 깡충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설명해 주며 그녀는 즐거워하였다. 솔향기를 맡으며 송악산 입구로 되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진지동굴을 발견하였다. 이 동굴은 일제 강점기 때에 태평양 전쟁을 벌이던 일본인들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인공동굴로, 탄약·포탄 등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안내판을 보며 아내가 설명해 주었다. 허리를 숙여 들어가 보니 깊이 5~6m 정도의 작은 굴이었다. 끌로 쪼아낸 듯한 검은 현무암 벽을 만져보니, 마치 아내의 배꼽 주변에 생긴 꺼끌꺼끌한 암 수술 자국 같았다. 진지동굴 벽을 배경으로 우리는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환한 미소 속에 내 눈물도 그때, 그 사진 속에 담겼을까?
진지동굴을 나오며 언젠가 꼭 못 걸은 길을 함께 걷자고 말하니, 아내가 웃으며 당신이 하는 것 보고라고 말했다. 내 손을 잡고 가는 그녀 앞에 언젠가 함께 걸을 길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섯알오름의 동그란 고사포진지 위에 하늘은 무심할 테고, 백조일손지 묘를 돌아 나올 때 가슴은 먹먹하겠지! 알뜨르비행장 터의 관제탑과 지하 벙커를 지나가면서 피눈물 나는 어두운 역사 위에 알싸하게 퍼지는 마늘밭의 향기를 맡으며 희망도 다짐하리라. 그날은 우리 지난 시절도 이곳에 남기고, 초록 벌판이 되어버린 옛 활주로 터의 들꽃 길을 당신과 함께 걸으리라.
*아랑조울 올레 10코스: 송악산에서 하모 체육공원까지
1) 송악산의 옛 이름은 물결이 운다는 뜻의 절우리 오름이다. 옛 지명에서도 드러나지만 바람이 자주 불고 거센 편이다. 해발 104m인 이 오름은 이중 분화구 구조라는 특이한 지형적 특징을 갖는다.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약 1시간 거리의 해안 절벽 데크 길을 걸으며 바다와 화산 절벽의 절경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계단이 많고, 중간마다 불규칙하므로 낙상에 주의해야 한다. 흰 지팡이를 사용하면 좋고, 등산 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면 훨씬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로써 시각장애인 기준 트레킹 난이도는 '중' 정도이다(등산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 기준이며 보행 시 안내자가 동반할 경우임). 계단을 피하고 싶은 전맹인 경우, 올레 코스를 벗어난 분화구 둘레길을 추천한다. 송악산 입구에서 해안 쪽이 아닌 경사진 해송 길을 십여 분 정도 올라가면 분화구 둘레길을 만날 수 있다. 걷는 시간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송악산 해안 절벽에는 15개의 해안 동굴 진지가 있으나 지금은 안전 문제로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송악산 입구 쪽에 탄약 저장이나 임시 대피용 인공동굴 진지가 몇 군데 있어 일제 강점기의 비극적 역사 현장을 촉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다.
2) 섯알오름의 고사포 진지는 일제 강점기에 알뜨르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해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폭 20m 너비의 원형 진지이다. 10코스 중간 스탬프 주변에는 '백조일손지 묘'가 있다. 이 묘는 백 명의 조상을 섬기는 한 명의 자손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6.25 당시 '예비검속' 때 이곳에서 국군이 제주도민들을 집단 학살하고 매장하였다. 십수 년이 지나 발굴할 당시 132명의 유해가 섞여 있어 신원을 추정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살아남은 자손들은 함께 모여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뜨르비행장 터가 있다. 알뜨르라는 말은 아래쪽 뜰이라는 제주어이다.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일제는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이곳에 비행장을 만들었고, 관제탑, 지하 벙커, 비행기 격납고 등이 아픈 역사의 상처처럼 남아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이들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제주편』을 읽기 바란다.
3) 송악산 주변 유적들은 다크투어(Dark Tour) 코스로도 유명하다. 다크투어란 역사적 또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비극, 재난, 또는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는 여행 형태로, 역사 속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각장애인 관점에서 아쉬운 것은 안내 표지판에 점자나 음성 해설 등이 전혀 없으며, 장애인을 위한 관광 해설 시스템도 없어 현장 탐방 시 깊이 있는 체험이 어렵다는 점이다. 송악산과 섯알오름을 제외한 이 코스는 평탄하여 시각장애인도 걷기 쉬운 코스다. 송악산 이후 화장실은 중간 스탬프와 하모 해수욕장에 두 군데가 있다. 올레 10코스 대부분이 햇빛을 가려줄 만한 숲도 없고 바람이 강한 곳이라 끈이 있는 등산 모자와 선글라스 착용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