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첫 시작.
즉, 탄생이 있다.
맞다.
탄생 또는 태어남.
부모의 몸을 빌어
모든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왜 이 세상에 와야 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성인들이야 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니
그분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에겐 크나큰 화두이자 의문이다.
하지만 누구의 말처럼 답이 없다.
인생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했다.
처음 난 그 말을 들었을 때.
인생에는 답이 없다는 그 말에 대해.
난 알 수 없는 엄청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엄청난 분노가 일어나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뭐랄까 그런 말은 그냥 너무 무책임하다고 할까.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겪게 되는 일들은
분명 어떤 이유로든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없다면
이건 그야말로 엄청난 낭비 아닌가.
시간적,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말이다.
우리 같은 범인.
즉, 평범한 사람들이 답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오만하게 단정 지어 버리는 건
그 어떤 절대자에게 위임받은 특권이란 말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은 다 맞는 말 같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보니
그 말은 분명 맞다.
그래 맞는 것 같은 게 아니라
확정적이고 단정적으로 말해
맞다.
인생은 결국 답이 없는 거였다.
그럼 왜 인생은 답이 없을까?
그거야 성공한 인생이든 실패한 인생이든
귀결은 오직 하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우리가 결국 싫든 좋든
최종적으로 가야만 하는 외길.
바로 죽음이니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명예가 높아도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아무리 학문이 높아도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다.
우린 그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그저 어린아이들이
모래밭에서 장난을 치며 놀면서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자신에게 올.
바로 그 순서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참 재밌는 건 또 있다.
이 세상에는 오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저 세상으로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비리비리해서
금방 인생의 끝자락으로 인도될 거 같던 사람은
천수를 다 누리고 가고
누가 보더라도 너무 건강해
절대 인생의 끝을 보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한순간 옛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답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성취를 많이 했건
아니면 너무 빈털터리라
빨리 이 세상을 졸업하고 싶은 사람이건
결국 그 결말.
그 종착점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얻은 성취나 그렇지 않거나
그 어떤 것이라도.
단, 한 개 조차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죽지도 않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굳이 내가 죽어보지 않아도
이미 먼저 죽은 자들에게서
그 증거를 찾으면
증거는 차고도 넘치지 않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죽음으로 귀결되는 하찮은 인생이니까
그냥 대충 살다가 가라는 거야?
어차피 죽을 거 노력은 왜 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아니 당장 이 순간에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 힘들게 살아.
그냥 죽기 직전까지 즐기면서 살지.
그런데 그게 가능하긴 한가?
언제 죽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막 살면
그 대가로 지옥 같은 삶을
꽉꽉 채워 천수를 누리게 한다.
잔인해...
신은 왜 이런 가혹한 운명을 인간에게 주었나.
그러면서 신은 인간 스스로가
자기 인생을 끝내면 그건 또 안된단다.
도대체 인간을 창조한 신은 왜 이래?
성격파탄자인가?
신을 대표하는 단어라면 이거다.
바로 전지전능.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자.
그럼 인간을 만든 창조주는 다 알고 있었던 거였다.
인간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걸 자기 마음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신이 보기에 인간의 인생 따위는
한여름 낮잠 정도의 하찮은 가벼움만도 못한 건가.
그가 설계를 그렇게 했다면
난 신에게 따지고 싶다.
왜 그렇게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지 말이다.
그냥 신이 가진 절대적인 능력을
아주 조금만 좋게 사용했어도
우린 모두 즐겁고 웃음 가득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취한 것들은
단 한 개도 가지고 가지 못하니까.
그럼 그동안 즐겁게 살다가 갈 수 있도록
절대자의 절대 능력으로 세팅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왜 사람을 만들면서
일부러 불완전하게 만들어
병을 만들고 노화를 만들고
남을 향한 시기, 질투와
그것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커져
강도와 살인까지...
그 엄청난 능력으로 신이라 불리는 자가
기껏 한다는 게
이런 고통과 암울함을
왜 자신의 피조물에게 주는 것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너무 난폭하고 사이코패스 같은 신이다.
설마 자신이 만든 인간들이 인생을 살면서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또 다른 누구의 말처럼
인생이란 사실 알고 보면
눈에 보이고 느끼는 이 모든 것이
사실 지옥이었다는 게 사실인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인생의 끝은
교도소에서의 출감을 하는 것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살은 탈옥이니까.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가 되었든 미래가 되었든
결국 저지르게 될 인간의 죄를
신은 미리 처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성공해
엄청난 돈과 높은 명예를 누리고 산다 해도
결국 그 어떤 것.
단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게 만든 것도 그렇고.
아무리 인생이 더러운 하수구처럼 막장이어도
인생의 끝. 죽음에 이르러선
결국 그 괴로움이 해방되는 것도 그렇고.
그런 것 같다.
인생은 내가 과거와 현재에 짓고
또 미래에 지을 죄에 대한
선제적인 속죄의 장일 수도 있겠다.
그럼 내 인생은
교도소에 수감된 죄인처럼
반성만 하면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건가.
그래서 혹시
세상을 등지고 홀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존경받는 건가?
수행자들은 깨달음을 위해
철저하게 혼자 고독하게 살지 않나.
그럼 그들은 모범수???
이딴 건 다 쓸데없는 넋두리 일 뿐...
영화 '빠삐용(불어로 [나비]란 뜻)'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꿈속에서 재판을 받는 꿈이다.
주인공은 재판관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재판관은 단호하게 주인공은 유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인생을 낭비한 죄..."
그래 가만 보면 나도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한 번뿐인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러면 마침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달아
누군가에게 등을 떠 밀리듯
인생의 종결점에 서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되는 거겠지.
그래
내게도 바로 그 순간이 왔을 때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이 세상에 대한
미련도 집착도 모두 놓아두고
새로운 세상...
아니 아무것도 아닌 무의 존재로 가는 길...
그 입구에 서 있을 때
최소한 후회는 하지 말자.
그것이 우리 모두가 아는 인생의 결말을
그나마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거겠지.
내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서서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의 시간만 더 달라고 신에게 떼를 쓰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멋지게 살아야겠다.
갑자기 이런 다짐을 해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