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졌던 순간에는... 21화

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by 맑고 투명한 날

솔직히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그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엄마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었다고 해도

성인이 된 내가 이성문제를 상담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이 절망의 늪에서 절대 벗어니지 못할 거 같았다.

당연히 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영원히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두려워할 거 같았다.

그래서 작은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구원해 주길 바랐다.


그래 그게 나의 소망이자 바람이다.


그래서 난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거짓 없이 모든 것을 말했다.

말하는 도중 굉장히 은밀한 이야기를 말해야 할 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작은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비교적 정확한 조언을 해주길 바란다면

될 수 있는 한 많고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현영을 처음 만나자마자 육체의 대화를 나누고

그것도 1년 내내 헤어질 때까지...


그리고 헤어진 후.

소개받은 지소영과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 오늘 작은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의 모든 일을.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말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아주 신중하게 경청했다.


가끔 앞에 놓인 음료수를 마시긴 헀지만.

제법 길고 작은 엄마에게는 지루하기만 할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 이렇게 된 겁니다."


작은 엄마는 말을 마친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참 따뜻했다.


나의 친엄마는 단 한 번도 내 손을 이렇게 땨뜻하게 잡아 준 적이 없었다.

아아... 지금 내 옆에 있는 작은 엄마가 내 친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나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렇게 허망하고 우울하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성근아."

"예, 엄마."

"넌 누가 좋아?"

"누구라니요?"


엄마는 잡았던 내 손을 풀고 고개를 돌려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만날 때마다 너의 육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조현영이란 친구."

"..."

"아니면 좀 답답하지만 2년이나 사귀었고 우리 성근이와 결혼하지 못해 안달인 지소영이란 친구 중에서 말이야."

"그게... 저도 잘... 그래서... 이렇게 엄마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데요."


작은 엄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우리 성근이는 소영이가 헤어지자란 말을 해서 실망했다고 했잖아?"

"그렇죠."

"그것도 자기 생각이 아니고 그 친구인 김미숙의 말을 듣고..."

"맞아요. 그래서 더욱 화가 나는 거죠."

"훗훗..."


작은 엄마는 내 대답에 작게 웃었다.

그런 모습에 난 순간 당황했다.


"우리 성근이는 욕심쟁이야."

"예? 제가요?"

"응, 소영이란 친구는 미숙이란 친구에게 조종당하는 게 너무 싫다고 했잖아?"

"예."

"그럼 지금 내가 우리 성근에게 조언을 해주면... 뭐랄까... 우리 성근이가 보는 관점에서 해석하면... 성근이야 말로 친구 말에 휘둘리는 줏대라고는 하나도 없는 소영이란 친구가 되는 거고... 난 성근이를 뒤에서 조종하는 그 김미숙이란 친구가 되는 거잖아. 안 그래?"

"하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잖아요."

"그럴까..."


작은 엄마는 잠시 침묵했다.

난 그런 작은 엄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보기엔 소영이란 친구나 우리 성근이나 지금 하는 행동은 같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미숙이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을 소영이랑.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우리 성근이... 솔직히 뭐가 달라. 둘 다 자기 의지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지도 못하잖아."

"하지만... 전 그냥 엄마에게 조언을 구하고... 꼭 엄마 말대로 행동하지 않을 건데요..."

"소영이도 자기 친구 말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상황인 거 같은데요..."


솔직히 좀 억울했다.


내가 작은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도움이 될 말이지.

어떤 결정을 나 대신 내려 달라고 한 건 아니니까.


소영이는 미숙이의 말에 휘둘려 나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 문제로 생겨난 문제 때문에 우린 둘 다 고생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작은 엄마에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어

나보단 인생을 더 살고 머리도 똑똑한 작은 엄마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거였으니까.


"그럼 성근이 넌 누구랑 결혼할 거야?"

"그게 잘... 모르겠어요."

"큭큭... 결국 너도 아버지랑 똑같구나."

"예???"


아버지랑 내가 같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어떻게 아버지랑 같단 말인가?

내가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나와 희선 언니 사이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방황하던 너의 아버지인 호종 오빠랑 지금 상황이 너무 똑같아서 말이야."

"..."

"내가 우리 아들이 만나는 둘 중 누굴 선택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

"그냥 내 이야기... 아니지 나와 관련된 너의 부모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줄 테니까. 그걸 듣고 우리 성근이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아."

"..."


평소 작은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너무 궁금했다.

왜 아버지가 작은 엄마가 아닌 친엄마를 만나 결혼을 했고.

왜 나 때문에 인생이 그렇게 망가졌다고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작은 엄마도 자신들의 이야기는 내게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작은 엄마가 묻지도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 했다.


"재미없을 텐데... 이야기 들어볼래?"

"예. 꼭 듣고 싶어요."

"후후. 그래 어쩌면 이게 내가 우리 성근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이 되겠네."


엄마는 흐려진 눈으로 한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작은 엄마와 친엄마는 어릴 적 한동네에서 살았다고 했다.

한 살 차이로 엄마가 작은 엄마보다 한 살 많았다.


둘은 같은 동네.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는데.

문제는 아버지의 존재였다.


두 사람이 멀어지게 된 원인...


어릴 적부터 머리가 비상했던 아버지는 또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엄마와 작은 엄마도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가 활동하는 학교 시 동아리에 둘 다 참석했는데.

시 동아리에 가입하려면 반에서 최소 3등 안에 들어야 자격이 주어진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아버지를 보기 위해 시 동아리에 가입했고.

아버지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친해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얼굴도 반반하고 몸매도 좋아서

인근 지역 남학생들에게까지 소문이 나고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했다.


당연히 아버지도 그런 엄마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한다.

작은 엄마는 얼굴이나 몸매에서 엄마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그땐 속만 태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엄마는 사귄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서울로 전학을 가고

그때를 노려 다른 남자들이 엄마에게 접근하면서.

엄마의 인생이 점점 꼬이고 공부와는 멀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작은 엄마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우연히 다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를 기회로 둘은 깊은 관계가 되었고 결국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둘 다 같은 동네 출신에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이라 양가 부모는 결혼식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아버지 쪽에서 갑자기 작은 엄마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는 거였다.


"난 사실 그 이야기 듣고 속으로는 기분이 상당히 나빴어.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거든."


엄마는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눈물을 흘렸다.

난 얼른 탁자 위에 놓인 티슈를 드렸다.


"오빠 부모님이 예전 사람들이니까. 대를 잇는 문제에 민감할 수도 있었을 거야. 그리고 나도 솔직히 자신 있었거든. 아이를 낳는 문제쯤이야... 나도 건강한 여자이니까... 그런데..."

"엄마..."


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엄마를 가볍게 안아드렸다.

내 어린 시절만큼이나 작은 엄마에게도 굉장히 힘든 과거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검사 결과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어. 절대 그럴 리가 없었거든... 하지만 수없이 재검사를 해도... 결과는 같더라... 내 난소에서는 난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야."

"..."

"그런데 그것보다 날 더 힘들게 한 게 뭔지 아니?"

"... 뭔데요?"

"그렇게 힘든 시기에 너 아버지란 사람은 희선 언니와 만나서... 결국... 널 가진 거야."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 원통하고 억울해 본인도 의식히지 못하는 그런 떨림 말이다.


그런데 작은 엄마에게 그 말을 들으며 굉장히 이상했다.


내가 태어나 곤란한 건 엄마가 아니라 바로 작은 엄마였을텐데.

내가 태어난 덕분에 아버지와 엄마는 결론적으로 결혼을 했으면서.

왜 두 사람은 항상 나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을까?


"그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오빠에게 그런 식으로 버림받고 배신당한 것도 너무 억울한데... 오빠를 내게서 빼앗아 간 사람이 다름 아닌 희선 언니였다는 사실이 말이야."

"..."


작은 엄마는 그 말을 하고는 내 품에 안겨 소리 없이 계속해서 흐느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졌는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땐 내 세상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해서... 수도 없이 죽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그래서 죽지 못할 거라면 마음을 굳게 먹고 살아보자고 치과에서 죽어라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이가 날 찾아왔어."

"아버지가요?"

"그래. 나에게 그러더라 너 엄마랑은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그땐 그이가 너무 미웠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날 잊지 못했다는 게 좋다가도... 언니랑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내가 말로만 듣던 불륜녀가 된다는 사실이 짜증이 나기도 하고... 하여튼 그랬어."


언제나 자신만 생각하는 아버지.

작은 엄마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한번 짓밟아 놓고는

또다시 찾아가 엄마와 이혼도 하지 않고 작은 엄마와 지금처럼 애매한 관계 설정을 한 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엄마는 왜 아버지에게 이혼하라고는 안 했어요?"

"했지. 수도 없이 했어. 그런데도 끝까지 안 하더라."

"전 잘 이해가... 아버지가 이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럼 내가 할머니가 될 텐데..."


솔직히 작은 엄마의 말에 놀랐다.

서울대 치대까지 나온 작은 엄마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작은 엄마는 아버지가 좋다고 해도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불륜이다.

엄마는 지금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고

법적으로도 엄마와 아버지는 부부사이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 세상 사람은 전부 작은 엄마를 불륜녀로 볼 수밖에 없다.

똑똑한 엄마가 왜 그런 시선을 받으며 아버지와 함께 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사랑이 그래... 이성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든. 특히 그게 내 상황이 되면 더 그렇게 되더라고... 나도 다른 사람이 지금의 나 같은 경우라면 당장 그만두라고 말했을 거야..."

"..."

"그런데 그게 내 상황이 되니까... 잘 안되더라고... 머리로는 납득이 되는데... 이 가슴은 그걸 전혀 납득하지 못해."


작은 엄마는 또다시 흐느꼈다.


"널 그이가 처음 데려왔을 때.... 솔직히 네가 너무 싫었어."

"..."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 때문에 나 아닌 희선 언니와 그이가 결혼한 거니까. "

"죄송해요. 결국 모든 문제는... 항상 그렇듯 바로 저 때문이었네요."


난 슬펐다.

아버지나 엄마가 그렇게 지겹도록 했던 말을... 결국 작은 엄마의 입을 통해서 또 듣게 된 거니까.

난 그런 놈이었다.

태어나선 안 되는 놈.

나와 관련된 사람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존재.

나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작은 엄마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그이를 닮아 조금만 설명해 줘도 금방 이해하고... 숙제도 내가 내 준 것보다 더 해오는 걸 보면서... 어떤 아이가 숙제 말고도 다른 문제집을 5권이나 더 풀어 오겠니."


그랬다.

난 작은 엄마가 너무 좋아서 과외할 때 쓰는 문제집 말고도

따로 더 많은 문제집을 샀고,

그걸 모두 풀어 작은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야..."

"..."

"왜 너같이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간 언니에게서 태어났는지 말이야."

"..."

"그 이를 언니에게 빼앗긴 것보다 더 아프더라..."

"..."

"만약 네가 내 뱃속에서 자라 태어났다면... 그 이와 함께 너도..."

"엄마..."


난 엄마를 힘껏 안아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장소였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한강 야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왜 세상은 항상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작은 엄마가 내 친엄마였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정말 좋았을 텐데...




2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