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박희선...
나의 엄마란 사람의 이름이다.
날 이 세상에 초대해 주었지만... 그건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박희선이란 여인이 내게 한 말과 행동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넌 왜 내 아들로 태어났니?!!"
"왜 그렇게 멋대로 태어나 날 힘들게 하는 거야?!!"
"지금이라도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려!!!"
언제나 이런 범주의 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
덕분에 난 남자이면서도 아무 때나 눈물을 질질 짜는 겁쟁이가 되었다.
나란 존재를 10달이나 뱃속에 품고 있었던 박희선이란 여인이
날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점점 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서 난 답답했고
자유롭게 숨을 쉬고 싶었다.
나에겐 아버지도 큰 문제였지만
박희선이란 여인은
그런 아버지와도 비교자체를 거부하는...
그런 악녀였다.
그래 악녀...
내 친엄마이면서 동시에 악녀.
그렇게 나란 존재가 문제였다면
피임을 하든가
그게 힘들었다면 중절 수술이라도 하면 그만 아닌가.
내겐 이 세상에 태어난다라는 선택 따위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내 부모가 될 사람도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는 다르다.
아이가 마음에 안 든다면...
아니 좀 더 그럴싸하게 말해서
여러 조건이 아이를 낳는 것보다
중단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면.
절대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 분명 중단하는 방법도 있었다.
요즘 같이 의학이 발달한 시대엔 특히나 더 간단하다.
그렇게 내가 싫었다면... 그냥...
하지만 내 부모는 잔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덕분에 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모르겠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붕괴되는 느낌이다.
난 작은 엄마에게 내가 만나고 있는 두 여자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다.
이딴 문제로 고민하러 온 게 아니었단 말이다.
"엄마..."
"응?"
"제가 두 여자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는 걸까요?"
작은 엄마는 날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미 두 사람은 상처받았어. 그리고 우리 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더 큰 상처를 받겠지."
"..."
"실타래처럼 이미 복잡하게 엮인 문제를 간단하게 풀겠다고? 글쎄... 그런 방법은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전... 그나마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까요?"
"없다니까. 상처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까."
"..."
작은 엄마는 굉장히 단호했다.
"두 여자를 모두 선택해도... 두 여자를 모두 포기해도... 두 여자 중에 하나를 선택해도... 결국 모두에게 지옥이 펼쳐질 거야. 마치 나나 그이와 희선 언니처럼... 거기에 너도 포함된 우리처럼..."
작은 엄마의 말에는 엄청난 가시가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보여주었던 선한 표정과 따뜻한 미소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 어렵네요..."
"그래. 그게 인생이야. 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어려운 문제..."
솔직히 말해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다.
과거 작은 엄마와 과외를 할 때.
내가 너무 어려워 전혀 풀지 못했던 문제들도 너무 쉽게 술술 풀어주었기에.
이번 문제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에서 겪는 문제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아참... 그... 조.. 현영인가 하는 친구 부모가 입원한 병원이 어디라고?"
"갑자기 그건 왜요?"
"응, 나도 뭔가 알아볼 게 있어서 말이야."
"아 그러세요. 그 병원은요..."
조현영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대해 작은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내가 너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작은 엄마는 밝게 웃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선배. 나야. 민정이... 당연히 잘 지내지... 응... 응... 다름이 아니라. 거기 병원 특실말이야. 혹시 비었어? 아 그게. 단골손님 중에 특실에서 좀 쉬고 싶어 하는 분이 계셔서... 나보고 좀 알아봐 달라고 하시네."
작은 엄마는 그렇게 통화를 이어갔다.
"아니 뭐... 돈 많은 사람이야. 자기가 하고 싶다니까. 그냥. 그런 거지... 그런데 특실에 있다는 그 환자 큰 병이야? 아니면 내가 소개하는 사람으로 바꾸면 안 될까? 돈은 걱정 말고... 안된다고?... 아아... 그래. 그렇구나. 아쉽네... 나중에라도 특실이 비면 연락 줘. 응.. 알았어. 고마워."
엄마는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저 때문에 전화하신 건가요?"
"그것도 있고... 내가 서울대 나왔다니까. 그 서울대 인맥을 이용해 자기가 편하게 지낼 특실 좀 소개해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겸사겸사 전화한 거야."
작은 엄마는 황당해하는 날 보며 음료수를 천천히 마셨다.
"특실에 입원했다는 현영이라는 친구의 아버지란 사람 말이야."
"예?"
"가짜라는데."
"예!"
작은 엄마는 갑자기 내 머리를 당겨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사람 죽지 않는다고..."
"..."
좀 멍했다.
사실 조현영 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것에 대해선 나도 솔직히 의심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 치고는 너무 건강했고, 심지어 링거조차 맞지 않았다.
거기다 병원 밥도 아닌 외부 음식. 그것도 장어 덮밥을 먹는다는 건...
그런데 지금 작은 엄마가 직접 병원 관계자에게 전화까지 해서 확인해 준 정보는...
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조현영이란 친구는 부녀 모두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아."
"..."
"왜 우리 아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든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 사람은 나중이라도 꼭 탈이 나고 마는 법이거든."
맞다.
작은 엄마의 말이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가 두 여자 사이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집에 들어가 봐야지."
"예. 그런데 엄마."
"응?"
"그전에 저도 전화 한 통만 할게요."
"그래."
난 조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와 만나며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것이다.
"응... 오빠... 그런데 좀 어색하네. 이렇게 먼저 오빠가 전화를 하니까..."
핸드폰 너머로 조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날래?"
"지금?"
"응."
"알았어..."
그녀는 언제나 화끈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고 시원시원하다.
"그 친구랑 지금 만나게?"
"예."
"그래. 난 우리 성근이를 믿으니까."
날 믿는다란 작은 엄마의 말이 내게 알 수 없는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엄마를 데려다준 후. 바로 조현영에게 갔다.
그리고 우린 함께...
과거 육체의 대화를 나누던 곳으로 갔다.
"하하, 정말 오랜만이네."
우리가 만나 육체의 대화를 나눌 때.
자주 애용했던 곳 중 하나인데.
조현영은 마치 이곳을 처음 온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2년 만이네. 흐흐흐... 오빠, 내가 먼저 씻어야 하나?"
"씻을 필요 없어."
"그럼 그냥? 그건 좀 더럽지 않나?"
"그냥 대화를 좀 하자는 거야."
조현영은 내 말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화만 하는데 이런 곳으로 날 데려 온다고? 오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진짜야... 진짜라고..."
습관은 참 무서웠다.
분명 조현영과 이야기만 하려고 한 거였는데...
나의 불순했던 조현영과의 과거의 습관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2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