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나랑 헤어져 있더니... 취향이 변한 거야?"
"현영아 그게 아니라고. 난 그저..."
하지만 참 옹색했다.
변명이라고 하기도 뭐 하고.
이건 누가 봐도 육체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난 거지.
대화를 위한 장소는 절대 아니니까.
"2년 동안 그 년하고 하면서 취향이 확실하게 바뀐 거 같긴 하네."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런 말을..."
조현영은 날 비웃었다.
그래 비웃어야겠지.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아는 현영인데.
특히나 우리가 만나기만 하면 했던
그 몸의 대화에 대해선 말이다.
"우리가 만나서 이런다고 해서 막 부끄러워해야 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현영아,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조현영에게 그나마 나란 존재를 포장하기 위한 핑계.
그리고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에 대한 부정을 하려는...
결국 엄청 잘못된 자기 합리화일 뿐이지.
"오빠,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조현영은 강제로 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허물 벗기듯 하나둘 벗겨 나갔다.
"너... 너..."
난 당황했지만
조현영이 지금 내게 하는 행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
왜냐고?
이건 습관이다.
그녀와 내가 함께 하던 시기에 항상 있었던.
일종의 의식 같은 습관.
"오빠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젠 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네."
"현영아... 난 말이야..."
참 비겁했다.
이미 완전한 탈피를 마친 내가 이런 비겁한 변명이나 하다니...
"사실 오빠가 날 절대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를 난 아주 잘 알아."
"..."
"그건 오빠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걸 내가 채워주기 때문이야."
"혀... 현영아..."
조현영은 내 몸에 기대어 아주 익숙하게 자신도 탈피를 했다.
그래 탈피...
이건 탈의가 아니라 탈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완전한 탈피 후.
한 마리 매끈한 뱀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씻어야지. 그 년하고 할 때는 취향이 더러워서 씻지 않고도 했는지 몰라도... 난 그게 안돼. 그러니까 어서 들어가자."
"혀... 현영아..."
난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예방접종을 하는 겁에 잔뜩 질린 어린아이처럼.
그녀 손에 이끌려 욕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함께 맞으며 우린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조현영.
그녀는 항상 카리스마가 넘친다.
나처럼 소극적으로 머뭇거리지도 않고
자기가 원하면 그걸 해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 난 뭔가?
방관자...
그래 난 방관자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언제나 내게 이득이 된다.
내 안,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그 동물적 본능이 꿈틀거리면
조현영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본능을 깨워주고 날 가득 채워줬다.
그래 난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녀의 카리스마는 나에게 도움이 된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몸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욕실에서 나와 물기가 사라진 내 몸을 침대에 가볍게 밀었다.
난 침대에 힘없이 넘어졌다.
작은 체구의 그녀가 날 천천히 민다고 해서 내가 넘어질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래야 한다.
그녀는 막 깨어난 살모사처럼 내 몸 위로 사르르 미끄러져 올라왔다.
그러더니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오빤... 내게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
"그거 알아. 날 처음 만났을 때도 나의 리드에 이끌려 즐거워하던 오빠의 모습을 말이야."
"혀... 현영아..."
"혹시라도 날 버리겠다는 그딴 미친 말은 하지 마. 그럼 난 오빨 이렇게 물어서 죽일지도 모르니까."
조현영은 작은 강아지가 아무것도 모르고 주인 손을 물듯이
내 목을 아주 살짝 깨물었다.
이빨이 아직 없어 아프지 않지만
어린 강아지에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여줘야 하기에
주인은 장난스러운 화를 내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날 너무나 잘 아는 그녀다.
난 그녀에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거지.
"오빤, 다시 만난 내게서 병원에서나 풍기는 소독약 냄새 때문인지... 가만있더라."
"..."
"그래. 남자라면 그러겠지. 충분히 그럴 거야. 그래서 내가 오빠를 위해 준비한 게 있지."
"..."
조현영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자신이 탁자 위에 미리 올려놓은 작은 향수병을 잡고
자기 몸과 내 몸에 살짝살짝 뿌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라졌던 나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그러다 그 본능은 미친 야수처럼 내 몸을 뚫고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도대체 뭐로 만든 향수일까?
얼핏 향기가 장미향 같기도 하고 계피향이 아주 조금 섞인 거 같기도 한.
나로서는 그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아주 묘한 향기...
"후후... 우린 절대 헤어질 수 없어. 오빤 그 사실을 이렇게 몸에 낙인처럼 지니고 있잖아. 하하하."
"에잇..."
이미 난 짐승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 몸 위에 올라탄 그녀를 거칠게 침대로 끌어내렸다.
"어멋..."
우린 그렇게 번식기를 맞이한 뱀처럼 서로의 온몸을 휘감았다.
**
17 ~ 18세기 프랑스의 사교계는 살롱 문화가 대표적이다.
평판 높은 귀족과 문인들이 모여 사교와 지적 교류가 활발화게 이루어지던 곳.
바로 살롱이다.
당연히 그곳에선 연애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하지만 살롱을 이용하려면 살롱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했다.
마담이라 불리는 여성이 살롱의 지배하고
아름답게 치장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살롱에 출입하며
지식인들과 귀족들 사이를 누비며 안면을 트는 곳.
당연히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흑심을 품었다.
하지만 대놓고 구애를 할 수 없었다.
그건 너무나 무식하고 교양이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동물적 본능이 남아있다.
살롱의 아름다운 여인들과 동물적 본능을 충족하고 싶으나 할 수 없으니.
그들은 돈으로 매춘부를 샀다.
살롱에선 귀부인과 젊은 여인들에게 품었던 흑심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해결했다.
살롱에 출입할 정도면 그래도 기본 교양과 에티켓은 있는 자들이지만.
그들도 가식의 가면을 여러 겹 벗길 것도 없이
단 한 꺼풀만 벗겨보면
살롱에 오는 아름다운 여성과 몸을 섞고 싶어 안달 난
그야말로 발정기 개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나도 그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고상하고 있는 척 하지만. 그야말로 그런 척만 하는 거지.
내 몸 안에 잠재된 그 야만적인 동물적 본능을 절대 이겨낼 수 없으니까.
난 사실 지소영과 만나며
내 안에 강제로 숨겨 놓았던
이런 본능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터부시 한 거였다.
살롱에서 만나는 여자들에게는 철저한 젠틀맨처럼 굴었지만
사실 돈을 주고 몸 파는 여자들을 이용하는 그런 이중적인 놈.
아니면 소영이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성적 흥미가 생길 그런 여성적 매력은 없는 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지소영을 만나면 절대 해소되지 않는 나의 본능이 너무 가득해
이렇게 조현영을 만나기만 하면
더 이상 물을 가둘 수 없는 뚝이 터지듯
내 본능도 조현영을 만나며 다시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래 맞다.
인정하겠다.
난 그런 놈이다.
그래서 조현영은 그런 날 과거부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그걸로 내 목줄을 만들어 쥐고는
가끔씩 내게 잠재된 본능을 해결해 주면
내가 자신을 절대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아주 잘 아는 것이다.
사실 오늘 난 조현영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우린 맞지 않고
너 같은 사기꾼 부녀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렇게 그녀에게 완벽한 포로가 되어버렸다.
서로 엉겨 붙은 우리의 몸은 용암처럼 뜨거워졌고
이제 우리의 몸은 이성의 명령 따위는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
철저하게 본능만 남은 우리의 몸은
인간이 아니라 생식을 위한 동물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서로의 몸만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놈이다.
본능에 너무나도 충실한 놈...
그래서 나의 부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되는 놈이라고
그렇게 누누이 강조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빠... 사랑해..."
"혀... 현영아... 나도..."
하지만 우린 지금
이 순간 행복을 공유한다.
그래 행복...
그리고 공유...
하아...
난 결국 작은 엄마가 준 선물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그런 못난 놈이다.
2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