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그녀와 육체의 대화를 아주 진하게 여러 번 나눈 뒤.
조현영을 그녀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본능에 충실해서였을까.
무척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그동안 피우지 못해 부족해진
니코틴을 채우기 위해
급히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에 밤하늘에 별빛은 모두 사라진 서울이다.
지소영과 헤어지려 했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조현영과 이별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또 실패했다.
점점 꼬이고 있다.
두 여자를 전부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 우유부단함 때문에 점점 일은 더 커지고 있었다.
틱...
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생각했다.
나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조현영이냐.
아니면 여자로서의 매력은 밋밋하고
특히나 친구인 김미숙에게 휘둘리는 지소영이냐.
하지만 조현영은
나와 만나기만 하면 내 육체가 그녀를 강력히 원하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녀와 만나면 행복하다.
날 육체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탁월하지.
그에 비해 지소영은
친구인 김미숙에게 휘둘린다는 것만 빼면
특별히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연애 상대로는 조현영이 좋을 수 있겠지만.
결혼 상대로는 성적으로 너무 헤픈 조현영 보다는
그래도 정숙한 지소영이 더 낫긴 했다.
하지만 조현영은 집안이 엄청난 부자다.
만약 그녀와 결혼한다면 엄청난 부가 보장된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조현영 부녀의 거짓말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거짓말.
죽지도 않을 사람이 죽는다고 연기를 한다는 건...
그러니 작은 엄마도 날 위해 강력한 팁을 주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다고 지소영을 선택하자니.
그 옆에 있는 김미숙 때문에 결혼 생활 내내 피곤할 것이다.
사실 지소영에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녀의 무색무취함.
좋게 말해 그런 거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날 확 끌어당길 여자로서의 매력이 조현영보다는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거짓말쟁이와 무색무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정말 너무 잔인한 거다.
하지만 난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으으으..."
그래서 그런지 머리가 아파온다.
싫든 좋든 결정의 시간은 곧 나에게 들이닥칠 텐데.
난 아직도 이렇게 방황만 하고 있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고...
**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긴 어디지?'
익숙한 곳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장소.
하지만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난 주위를 서성거리다 갑자기 나타난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석처럼 그 문을 향해 걸었다.
'이건 내가 어릴 적 살던 내 방 손잡이인데...'
이상한 일이다.
난 천천히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러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내 앞에는 예전 살던 집의 거실이 보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부모님.
난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따로 살자."
아버지가 엄마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싫어. 내가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엄마는 평소와 달리 굉장히 차분하게 대답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엄마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는데...
굉장히 이상했다.
"우린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있어. 그러니까 별거를 하는 거야."
"아이고. 나한테 이혼을 하자고 안 해서 내가 엄청 고마워할 줄 알았니?"
"그게 아닌 거 잘 알고 있잖아."
"알긴 뭘 알아. 너 민정이랑 같이 살려고 꼼수 쓰는 거 다 아는데."
엄마는 평소와 달리 화를 굉장히 많이 자제하고 있었다.
난 원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몸을 돌려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야! 쥐새끼처럼 어딜 들어가! 너도 이리 와서 당장 앉아! 오늘 끝장을 볼 가족회의를 하자고!"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
난 순간 얼어붙었다.
또다시 지옥이 시작된다....
2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