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 날보다 사전 준비가 더 힘드네요. 종합검진을 받으며(D-244)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마지막(?) 종합검진인지라 어떤 것을 추가로 받을까 고민하다가, 최종 결정한 것이 '대장정밀 수면 위내시경'입니다.
그냥 기본적인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수면 상태에서 내시경으로 위와 대장을 정밀(?)하게 검진한다는 것이지요.
계속 생기는 용종
40대 중반(2008년)에 처음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대장이 아주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당시에는 술을 많이 먹을 때라서 좀 안 좋은 증상이 있을 줄 알았거던요. 그런데 깨끗하다고 하니 농담으로 "매일 알코올로 장를 세척해서 그런가 보네" 하며 웃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4년 뒤(2012년)에 대장 내시경을 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용종이 발견되었는데 하나는 5㎜ 또 하나는 9㎜짜리 용종이네요. 보통 5㎜ 정도는 대장 내시경 검사 시 떼어낼 수가 있는데, 5㎜ 이상의 크기이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다시 대장 내시경 약을 먹고 하루 입원하여서 용종 제거술을 받았습니다. 용종의 크기가 클 경우 제거 시 혹시 대장에 천공이 생길 수 있으니 입원하여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바로 제거는 잘 되었지만 제법 큰 용종이 나왔으니, 다시 2년 뒤에 검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2년 뒤(2014년) 받은 대장내시경에서도 용종(폴립 Polyp) 한 개가 나왔지만, 다행히 괜찮은(?) 용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용종이 나오는 상황이니 2년 뒤에 한번 더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다시 2년 뒤(2016년)와 1년 뒤(2017년)에 받은 검사에서는 용종이 발견되지 않은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2020년 검진 때에는 용종이 나왔는데, 조직 검사를 해보니 이번에는 선종이라고 합니다.
선종은 대장암으로 발전하는 용종을 말하는데, 대장암의 약 80% 이상이 선종으로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대장암의 씨앗'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을 제거하면 대장암의 발병 빈도를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2년 뒤(2022년)에도 선종 1개, 그리고 2023년 검사에서도 연이어 선종 1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한 것인데, 이러다 보니 대장내시경을 받은 횟수가 벌써 10회가 되어 갑니다.
준비가 더 힘들어요
위내시경의 경우 전날 저녁식사를 가볍게 하고, 검사 당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으면 되니 상당히 편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 이놈의 대장내시경은 검진 3일 전부터 음식을 조절해야 하고, 검진 전날에는 흰 죽 정도만 겨우 먹을 수 있어 엄청 허기가 지더라고요.
보시는 것과 같이 검사 3일 전부터는 그냥 '드실 수 있는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년 전에도 먹을 수 없는 것을 피해서 먹기가 어려워 그냥 먹을 수 있는 것만 먹었더니, 하도 허기가 져서인지 종합검진 후 엄청 먹겠다는 일념과 희망으로 버텼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배고픈 대장내시경 후 속을 보호하기 위해 점심에는 간단하게 죽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좀 이른 오후에 뷔페에 가서 미친 듯이 먹었네요.
더 큰 어려움은 바로 약의 복용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약의 이름이 '오라팡'인데, '응가야 오라~ 팡 나온다'는 의미로 지은 것인지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글로벌을 목표로 지은 이름인데 제가 너무 싼 티 나는 이름으로 생각했던 게 미안하네요.
오라팡은 'Ora(경구제)'와 'Fang(4대 IT기업인 Facebook, Apple, Netfix, Google을 의미)'을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개발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한국팜비오'라는 곳에서 5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최초로 경구용 황산염 액제의 신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먹었던 오묘하게 역한 대량의 물약보다는 정말 먹기에 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두 번을 먹고 이번까지 세 번째 오라팡을 먹고 있지만, 아래 내용과 같이 약과 물을 먹는 것도 곤욕입니다.
처음 오라팡을 복용했을 때는 검진 당일 새벽에 오한이 나서 한참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두 번째 복용할 때는 별 증상 없이 넘어가기는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오라팡을 복용했는데 나름 요령이 생겨서인지 비교적 순탄하게 속을 비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1ℓ의 물을 마시는 게 곤욕이기는 한데 300㎖의 병에 정수, 따뜻한 물, 이온음료를 각 ⅓을 넣고 마셨더니 훨씬 편하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전 여유있게 300㎖ 병으로 5번, 그러니까 총 1.5ℓ를 마셨네요.
이렇게 검진 전날 오라팡 14알을 먹고 속을 비운 후, 검진 당일 새벽에 나머지 오라팡 14알을 먹고 다시 속을 비운 후 병원으로 걸어갔습니다. 속을 비울 때 보면 급하게 화장실을 찾기 때문에 혹시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갈 때 괜찮나 싶은데, 약을 복용 후 한 2시간 정도가 되면 제법 안정화(?)가 되기는 합니다.
이렇게 한 번 속을 싹 비운 후 변기 속을 보면, 나름 속이 무척이나 깨끗해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 그래봤자 몇 시간 뒤면 다시 거시기(?)가 쌓이기는 할 테니지만요.
안 자려고 애쓰지만 결국 기절~
수면 내시경을 받는 이유가 무섭고 괴로운 것을 모르게 넘어가려고 선택한 것인데, 왜 수면에 사용되는 약물이 주사되면 안 자려고 굳이 애를 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수액주사도 손등의 혈관에 꼽고, 입에 마우스피스(또는 바이트 블록)도 끼고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저를 내시경실로 이동시키더군요. 그러고 나서 수면주사를 넣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저를 보더니 간호사분이 한 말씀합니다.
"그냥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눈 감으세요"
아마 제가 긴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 중입니다.
그게 제가 들었던 내시경 전 마지막 목소리였고, 눈 떠보니 대기실에 누워 있네요.
여기저기 내시경을 받은 분들이 누워있고, 한 두 분씩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더니 좀 더 있으라고 하는데, 이번에도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겠습니다.
별로 해보고 싶지 않았던 경험
지금 다니는 대학병원에서 17년째 검진을 받고 있는데, 하루는 아내가 다른 곳도 가보면 좋겠다고 하여 좀 떨어진 다른 대학병원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위와 대장 내시경을 받았는데 수면약을 주사했지만, 아직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입으로 내시경을 넣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아직 수면효과가 안 나타났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에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 때문에 '웅웅'거리다가 기억이 끊어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내시경이 식도로 넘어가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서 다시 기존에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이네요.
수면내시경 후 기억 상실?
아직도 수면 내시경에서 사용한 약물로 인해 좀 멍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간단하게 검진결과에 대한 설명도 듣고 '상세 결과 확인일'을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대장에서 용종을 하나 떼어냈다고 하네요. 이놈의 용종은 왜 이리도 생기는지 참 답답하네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결과 확인일을 몇 일로 결정했는지, 의사분이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이래서 수면내시경을 하면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분명히 의사분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상세한 대화 내용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처음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는 최종 의사 소견 페이지에 한 두 줄 정도의 내용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분량이 늘어나서, 요 근래에는 한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더라고요.
제 나이또래인 동기들과 만나면 서로 자랑하듯이 "나는 두 페이지다", "나는 한 장 하고도 반 페이지다"라고 이야기를 나눕니다만 참 슬픈 현실입니다. 별로 반갑지 않은 상황이기는 한데 노화되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니 일정 부분은 받아 드려야겠지요.
예전에 '9988'이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라는 의미인데 나이가 들 수록 꼭 '9988'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라는 비영리 단체가 시행하는 안락사(존엄사)가 한국에도 도입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8개월 동안 요양병원에 계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생을 살다가 인간답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