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한 선배의 재취업 포기 이유가...(D-237)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저보다 3년 먼저 퇴직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서둘러 방음부스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한 이유는 지난번 지인 소개로 지방의 한 중견기업에 면접을 봤었는데, 이제야 합격 통보가 왔다고 합니다. 퇴직 후 재취업은 많은 퇴직자의 희망이기도 하니 정말 잘 된 일이지요.
어! 그런데 합격한 회사에 안 가기로 했다고 하네요. 남들은 정년퇴직 후 재취업이 어렵다고 걱정하던데,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면접 후 결과를 기다리며
그 회사가 선배에게 처음에 제시한 보직은 품질관리를 총괄하는 임원 자리였습니다. 아마 선배가 예전에 부품품질관리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추천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회사는 지방에서도 제법 큰 중견기업이라서 그런지, 대충 추천받은 사람을 그냥 뽑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업무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임원과 사장과도 대면 면접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로부터 '인성과 업무 역량 평가'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저와 제 후임 팀장이 평가도 잘(?) 해주었지요.
그러고 나서 한 동안은 회사로부터 합격 여부에 대한 연락은 없었고, 간혹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하는 전화만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올해 초 모임에서 결과를 물어봤는데, 아직도 최종 합격 여부에 대한 연락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나온 후부터 약 6개월 정도 되었던 시점이라, 같은 모임에 있던 모두가 연봉을 높게 불러서 안 될 거라고 이야기는 했었지요. 제 생각에도 회사가 지방에 있어서 그렇지 연봉이나 조건은 썩 괜찮은 회사였습니다.
안 가는 이유?
그렇게 기다리던 업체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왜 안 간다고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전화로 저에게 설명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1. 처음 제시했던 임원 자리가 아니라, 팀장 자리로 갑자기 수정 제시하였다고 합니다.
2. 처음 약속한 정규직이 아니라, 1년 단위의 계약직 팀장 자리라고 했답니다.
3. 회사가 지방에 있는데, 숙소 및 식사 제공이 안 된다고 하네요.
즉, 처음 말한 것과 달리 조건이 계속 바뀌는 것을 보니, 막상 계약을 한 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자기들 편한 데로 바꾸는 것을 보면, 저라도 신뢰가 안 생길 것도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닌데 제가 다 아쉽네요.
정년퇴직 후 많은 분들이 재취업의 기회를 갖고자 하나 매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저보다 1년 먼저 퇴직한 동기도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쉽게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주로 바로 일 할 수 있는 유경력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랍니다. 처음부터 알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는 괘씸한 생각도 들지만, 뽑는 입장에서는 유경험자가 확실히 일하기는 좋겠지요.
대기업 출신은 우선 거른다고 하고, 전문성이 높아도 기피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아시는 분이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시는데 거래하던 큰 기업의 부탁으로, 퇴직한 고위직 한 분을 채용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처리가 안 되냐?", "잘못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전에 있던 곳에서는 이렇게 일했다" 등등 일은 안 하고 사사건건 잔소리만 하다가 반년 만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자존심을 버릴 수 없어서라고 하네요.
대기업의 경우 잘 짜인 조직과 네트워크로 인해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는 게 보통인데, 중소기업의 경우 혼자서 여러 명의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조직관리의 어려움도 있어 채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재취업을 하고자 하면 그 회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존심은 개나 줘버려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퇴직한 다음 달부터 국가로부터 실업급여를 최대 9개월 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들어오면 일단 숨통은 틔일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34년 동안 직장생활을 이제 막 끝냈는데, 다시 낯선 직장에서 직장생활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도 정년퇴직 후 1년 미만에 취업이 된다면 너무나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년퇴직 후의 생활은 여유롭게 즐기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비록 금전적 여유는 없지만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해보고 싶은 소박한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던 봉사활동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지금 자리에 앉아 소박하게나마 어떤 일을 해볼까 하는 저만의 'To Do List'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