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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 둥글어지려면...

사람도 누군가의 조언과 충고를 통해 다듬어집니다(D-230)

멀리서 아끼는 후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마 팀장하고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팀장과 의견차이가 제법 큰 모양입니다. 예전 제 모습과 후배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한 가지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모난 돌!

갑자기 조직이 공중 분해되면서 다른 조직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갓 과장을 달아서 열정과 의욕이 충만할 때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던 때였습니다.


그때 만났던 이사님이 계셨는데 저하고는 정말 안 맞는 분이라 많이도 부딪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빠르게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이사님은 돌다리를 두들기다 못해 부셔서 돌인지 확인한 후에야 건너는 타입이라 매일 확인에 확인이 필요하셨던 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 제 모토는 '생각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였고, 이메일 하단에도 붙여서 보냈곤 했을 정도였으니 정말 성격 상 상극인 분과 같이 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하니 큰 사무실에 이사님 혼자 와계시더군요. 가볍게 인사나 하고 자리로 가려고 하는데 이사님이 저보고 커피 한 잔 타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또 무슨 잔소리나 업무 확인 지시를 하시려고 저러시나 하는 생각이 드니 심사가 뒤틀리더군요. 그래도 믹스커피 두 잔을 타서 한 잔은 이사님 쪽에, 한 잔은 제 자리에 놓으면서 앉았습니다.


따뜻한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이사님이 저에게 책 한 권을 쓱 밀어주더군요. 지금은 책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법정스님의 서적 중 한 권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해서 책 한번 보고 이사님 얼굴도 한번 보고를 여러 번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손으로 만든 삼각형]

이사님은 저를 보고는 손으로 삼각형을 만드시면서 "자네는 이런 모양이야. 육각형도 사각형도 굴리기 힘든데 삼각형은 얼마나 굴리기가 힘들까? 좀 둥글게 살면 안 될까?"라고 하십니다. 오죽 답답하시고 힘드셨으면 한참 나이나 직급 차이가 나는 부하직원에게 책을 사주시면서, "좀 둥글게 살면 안 될까?"라고 하셨을는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인사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왔더니, 바로 윗선배가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씩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맞아, 넌 거의 쌈닭 수준으로 대들고, 업무는 탱크같이 무식하게 돌진하잖아"

"오직 했으면 이사님이 책을 사주시면서,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시겠냐!"

"좀 잘해드려라. 무척 서운하셨던 모양이다"라고요.

요즘도 그때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는 창피하고 죄송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힘든 과정을 거쳐야 쓸모 있는 존재가 됩니다

'모난 돌은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돌출된 돌이 망치질을 받는다'는 뜻으로, 돌을 다듬는 과정에서 돌출된 부분이 가장 먼저 망치로 깎이는 것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사회적으로 눈에 띄거나 주변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먼저 주목을 받아, 비난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쉽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거제 여행 중 잠시 들렸던 '학동 흑진주 몽돌해변'에서 봤던 동그랗고 까만 몽돌들이 생각납니다.

상류의 모난 돌들은 지반이 깎이거나 떨어져서 갓 나온 거라 모나게 생겼습니다. 이 돌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물살에 깎이고, 내려오면서 돌들끼리 부딪쳐서 모난 부분들이 깎여나갑니다. 반면에 하류는 상류보다 물살의 힘이 약하고 더 완만한 경사면을 가지고 있어, 돌들에 작용하는 힘도 약하게 작용합니다. 이로 인해 하류의 돌들은 물의 흐름에 의해 부드러운 모양으로 연마가 됩니다.


수많은 세월의 풍파와 세찬 물살을 겪으면서, 돌은 마침내 낮은 곳에서 부드럽고 둥글게 변하게 됩니다.

돌 하나가 둥글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의 고난이 있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종합제철소에 근무할 때 알았던 공정인데, 시간이 많이 흘러 대강만 기억이 나네요.

종합제철소에서는 첫 번째 공정으로 철광석과 연료인 코크스를 고로에 넣어 쇳물을 만듭니다. 이후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강철로 만드는 제강공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쇳물을 용강이라고 하는데 이 액체상태인 용강을 연속 주조기에 넣어 통과하면서 냉각시키면, 길이 8m, 두께 200~350mm, 무게 35t의 슬래브가 생산이 됩니다. 다시 뜨거운 슬래브를 여러 개의 롤(Roll) 사이로 통과시키며 연속적인 힘을 가하면, 길고 얇은 열연강판이 나오게 됩니다. 이 열연강판을 한번 더 열을 가하여 여러 개의 롤 사이로 통과시켜서 만들어진 제품이 냉연강판입니다. 냉연강판은 두께도 얇아 대략 0.2~2.0mm 정도가 됩니다. 처음 슬래브의 두께에 비해 엄청나게 얇아지면서 표면도 미려하고 가공성도 우수하여,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 또는 자동차 등에 사용됩니다.


철광석은 뜨거운 열에 호되게 당하고, 수차례 아픈 가공을 거친 후 냉연강판이 됩니다.

이후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들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이 되는 것이지요.



모난 돌이 스스로 둥글게 다듬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애정 어린 조언, 필요에 따라서는 따끔한 지적 등을 통해 한결 성숙한 사람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초보자의 글도 그렇지만, 글쓰기를 오래 한 사람이라도 초고를 쓴 후 다시 보면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 글을 다듬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후배와 팀장이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아까 보다는 다소 차분해진 상태지만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들리네요. 이야기가 끝나면 후배한테 조용히 가서 차 한잔 하자고 해야 될 것 같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달리는 펭귄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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