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27, 나쁜 리더를 보면 좋은 리더가 보입니다.
어느 날 신입사원이 저에게 "좋은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묻더군요.
잠시 생각을 해보니 참 많은 것이 떠오르네요.
'소통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한다',
'적극적 경청 능력이 좋아야 한다'
'직원의 경력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자신감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정직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만 잠깐 찾아봐도 끝없이 좋은 리더의 자질에 대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나쁜 리더를 보면 좋은 리더가 보입니다
후배사원의 물음에 대해 주저 없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본받지 말아야 할 리더를 보고, 그 행동을 따라 하지 않으면 좋은 리더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라고 말하면서, 지난 직장생활 중 만났던 본받지 말아야 할 리더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좋은 리더보다는 못나거나 나쁜 리더를 훨씬 많이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례를 통해 한번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1. 사람은 좋은데 무능한 리더
이전 팀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퇴사한 후 급하게 팀장으로 올라온 분입니다. 이전부터 성격이 좋으셔서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던 분이라 모두 팀장으로 승진한 것을 축하하였지요. 그런데 문제는 업무에 대한 깊이가 없다 보니 임원에게 보고 시 빈틈이 너무 많아서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혹시 TV 드라마에서 보고를 받던 직장 상사가 결재서류를 하늘로 던진 후, 팔랑팔랑 나부끼면서 떨어지는 서류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두 눈으로 목격하니 정말 영화 속 슬로 모션처럼 A4 용지가 눈앞에서 춤추듯이 날아다니더군요. 이러다 보니 추진해야 할 업무는 거의 뻘에 빠진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어, 실무자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셀 수 없이 보고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 겨우 한 발짝 내딛고, 다시 멈추기를 반복하다 포기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런 시간이 반년 간 흐른 후 결국 팀장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팀 또한 다른 팀에 합병되는 신세로 전락하였으니 무능한 리더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팀원들의 몫입니다.
2. 똑똑한데 권위 의식으로 똘똘 뭉친 리더
본인이 맡은 쪽 분야에서는 다들 인정하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편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라고 할 정도로 이해력도 좋고 판단력도 뛰어난 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은 흔히 말하는 '꼰대'라는 것입니다. 아침 회의를 하거나 주간업무를 시작할 때마다 일장연설이 시작됩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니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업무에 매진해야 한다"와 같이 CEO급 멘트가 끊이질 않습니다.
출근하거나 퇴근 시 인사를 안 한다고 잔소리, 보고서 작성 시 기본이 안 되었다고 잔소리, 조그마한 실수라도 반드시 지적질, 난 예전에 이렇게 노력했었다는 공치사, 윗분 누구랑 각별한 사이라는 허세 등 참 구태가 줄줄 흐르고 직원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니 누구보다 빠르게 다른 회사로 내빼더군요. 결국 이 팀도 계열사 내 유사 조직으로 통합되고 말았습니다.
3. 똑똑한데 결정장애인 리더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졸업하신 분답게 똑똑하기는 한데, 업무에는 헛똑똑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결정장애입니다. 급하지 않은 일뿐 아니라 급한 상황인데도 결정을 못 내리고, 계속해서 검토와 조사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입니다.
처음 만나서 일할 때는 꼼꼼하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걱정이 태산이신 분입니다.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본인에게 불통이 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결정을 못 내립니다. 실제로 몇 단어와 그림 정도만 수정한 것이 거듭되다 보니, 보고서의 버전이 무려 70번입니다.
"○○○ 보고 v1, ○○○ 보고 v2, ○○○ 보고 v3, ○○○ 보고 v4,..., ○○○ 보고 v69, ○○○ 보고 v70" 이전 보고서를 폐기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젠가는 또 활용을 하니까요.
이러니 실무자는 속에서 열불이 날수 밖에요. 결국 이 분도 1년 만에 임원에서 물러나셨네요. 그러고 나니 이전에 밀렸던 일들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더군요.
4. 안 똑똑한데 윗분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한 리더
분명하게 똑똑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진급을 거듭하여 빠르게 임원이 된 분입니다.
보고를 하면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이야기만 한 후 다시 검토하고 보고하라고 합니다. 이게 한 두 번이면 그냥 넘어갈 텐데 모든 사항에 대해 밥먹듯이 반복되니 돌파할 묘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한 번은 해외 출장 후 업무 개선에 관한 보고서를 수차례 수정을 거듭하면서 이틀간 밤샘 작업을 하여 완료하였습니다. 웬일인지 흔쾌히 사인을 한 후 바로 부회장실로 같이 들어가서 보고를 하자는 것입니다. 부회장님은 보고 내용에 대해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수고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런 보고를 부회장님한테 했으니 영광인 줄 알아라"하며 많은 직원들 앞에서 칭찬을 하더군요.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받은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말끝마다 회장님이나 부회장님 의중을 잘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분은 계열사로 옮기면서 전무까지 승진하셨으니, 실력보다는 휴먼네트워크의 우월성을 보여준 분입니다. 다만 조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같은 일만 반복하지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5. '모두 네 탓(남의 탓)이오'라는 리더
유능과 무능은 차치해 두고, '잘한 일은 내가 한 것이고, 잘못한 것은 네가 한 것이다'는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일이 잘 될 때는 본인이 조직을 잘 운영하고 직원들을 잘 코칭하여 얻은 성과임을 꾸준히 언급하고 자랑을 합니다. 반면에 문제가 발생되면 담당자의 능력 부족이나 실수로 발생하였다고 밀어붙입니다.
실제로 조직 내 중대한 실수가 발생하였는데 실무자는 징계를 받았고, 결재권자인 본인은 무탈하게 넘어가는 것을 봤습니다. 이러니 적극적으로 나서 일할 사람이 없게 되면서, 마치 좀비와 같은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임원도 2년 뒤에 퇴사를 했는데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더군요.
6. 권한위임을 빙자한 무책임한 리더
모든 권한을 팀장이나 그룹장에게 위임을 한 것은 무척 반길만한 일입니다. 문제는 권한이 위임되었으니 알아서 잘하라는 것입니다. 일절 업무에 대해 관여하지 않으며, 결정 사항이 필요할 때도 '묵묵부답 또는 알아서 해라' 하는 식으로 대응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결과는 매번 확인합니다. 이러니 관련 팀과 협의하고 결정을 내려해야 할 실무자는 답답하고, 업무는 계속 방향을 못 잡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절대로 진행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고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는 임원급 회의에 팀장이 대신 참석하여 발표하게 만들며, 이에 대해 부끄러움조차 없습니다. 덕분에 이 임원이 잘린 후 밑에 있던 팀장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기회를 얻기는 했습니다.
7. 매번 말이 바뀌는 일관성 없는 리더
각종 회의 또는 보고 시 하는 말이 매번 달라집니다.
심지어는 아침에 보고받을 때 지시한 말과 오후에 보고받을 때 지시하는 말이 다릅니다. 미묘하게 다르면 뉘앙스차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아예 다른 방향의 말을 하니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참다못한 보고자가 매번 말이 바뀐다고 대놓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심지어는 녹음을 해서 가지고 있다 리더가 다른 말을 하면, 녹음자료를 틀어놓고 요목조목 따지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굳건하게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웃찾사 코너의 말처럼 상황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본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발뺌을 합니다. 결국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상사 평가와 조직 평가에서 회사 내 최하 등급을 받아 면직되었습니다.
8. 예측 불허, 돌아이 리더
위에 있는 모든 사례의 종합판이자 결정판인 임원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 고난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무서운 것이 실실 웃으면서 농담처럼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급발진하며 거친 말과 심지어는 욕설도 넣어서 몰아붙입니다. 처음 당하는 사람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정신이 쏙 빠지게 만듭니다.
잘못한 일이 있을 경우 이를 빌미로 사람을 인민재판 수준으로 궁지에 몰아 놓습니다. 이러다 보니 멘털이 약한 여직원이 졸도하여 119에 실려가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니 어느 누구도 반발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돌아이 임원 입장에서는 마음껏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이 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이 아니었나 하네요.
이런 상황은 급기야 회사 전체에 회자(膾炙)가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인사 담당 임원이 직접 면담을 통해 이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나요? 오히려 자기는 잘못이 없고 직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해 강하게 코칭하고 있다고 강변하였고, 마이동풍식으로 대응하면서 인사 담당 임원도 3개월 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조직은 피폐되고 일부 직원은 퇴사하는 등 상황은 악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경영층에서는 맡은 조직의 성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기의 끝은 여직원 성추행 문제로 그 결말이 났습니다.
어찌 된 상황인 줄은 모르겠지만 지나친 안하무인식 행동으로 발생한 것으로 소문이 나더군요. 다른 이유보다 중대한 사항으로 결국 퇴사하게 되었는데, 역시 끈끈한 휴먼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계열사 중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동한 계열사의 동기에 물어보니 '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처럼 첫 주간회의를 토요일에 진행했다고 합니다. 얼마 간 그 계열사에서도 시끄러운 잡음이 들리더니 약 1년 만에 아웃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2차 계열사의 임원으로 이동을 하였고, 거기서도 약 1년 만에 쫓겨나기는 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다니는 곳마다 문제를 만들면서도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참 회사라는 조직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경영진에서는 조직보다는 성과에 더 관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조직을 흥하게 하는 리더가 있고, 조직을 망하게 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면, '좋은 리더와 나쁜 리더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리더와의 행동을 통해 얻은 경험은 제가 리더가 되었을 때 좋은 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입사원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본받지 말아야 할 리더를 보고, 그 행동을 따라 하지 않으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였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