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니까 정년퇴직이 느껴지네요(D-23)
어떤 일이던 시작을 하면 끝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침부터 인사팀과 촬영팀이 부산스럽게 사무실을 오가고 있습니다.
제 일인데도 남의 일인 듯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직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네요.
“응, 나 정년 퇴직한다고... 지난 회사 생활에 대해 인터뷰를 하자고 하네”
그렇게 시작한 인터뷰는 예상 시간인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가까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는 입사부터 퇴사까지의 여정을 하나의 짤막한 다큐와 같이 찍는다고 합니다.
"첫 출근 때의 느낌 → 신입사원 때 어려움 →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회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사람은? → 당시에는 큰 일이었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 → 회사 생활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 제2의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미리 준비했던 질문들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미쳐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이 추가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같이 퇴사하는 동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저 가족들에게 고마울 뿐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35년의 직장생활 동안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도와준 가족들이야 말로, 정년퇴직의 일등 공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년퇴직이 멀리 있다고, 아직은 좀 더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눈앞에 결승선이 보이는 듯합니다.
마라톤 풀 코스인 49.195km의 결승선에서 보면, 도착 후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선수, 체력이 고갈되어 주저앉는 선수,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선수, 심지어 실시하는 선수까지 다양합니다.
직장이라는 마라톤 풀 코스의 결승선을 머릿속에서만 그려보다, 곧 이 코너만 돌면 보인다고 생각하니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결승선을 통과할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네요.
질문 중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2026년 1월 1일의 아침은 어떤 기분이실까요?”라는 질문에...
“아마 2026년의 1월 1일의 아침도, 2025년의 12월 31일의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오늘이 인생 2막의 새로운 시작임을 저 스스로에게 일깨워 주는 정도가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후배 사원들이 떠나는 저를 위한 축하 영상을 찍고 있더군요.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모니터를 그저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별 일도 아닌 것인데 왜 이리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