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차를 떠나보내며...

오랫동안 함께 하였던 로체 이노베이션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주차장 한 편에 조용하게 쉬고 있는 흰색 차량이 늘 눈에 들어옵니다.

한 번씩은 산책하듯이 타고 나가야 하는데 매번 발길은 새 차로 옮겨지네요.


2009년 카니발을 타고 다니다 문득 든 생각이 "이렇게 큰 차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게 맞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니발을 대신하여 구입한 차량이 로체 이노베이션이었습니다. 이 차는 기아가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기 위해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여 만든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인 '타이거 노즈(Tiger Nose)' 그릴이 적용된 최초의 차량입니다. 저도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을 무척 좋아했지요.

기아 타이거 노즈.png [타이거 노즈 최초 적용 차종인 로체 이노베이션]

현재 기아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인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와 달리 무척 직관적 디자인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오퍼짓 유나이티드'의 의미인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이라는 것은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구구절절 좋은 의미를 잘 정리한 선언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디자인은 이웃집 '현토로' 보다는 나아 보이네요.

오퍼짓유나이티드.png [기아 오퍼짓 유나이티드 이미지]

제가 K5 하이브리드로 바꾸고 다시 니로 하이브리드로 바꾸면서 로체는 딸에게서 아들로 운전자가 바뀌었지요. 그러다 보니 운행하는 날보다 주차장에 서있는 날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보험료, 주차비, 자동차세, 소모품 교체비, 차량 검사비 등 정기적인 비용 외에도 감가상각비까지 생각하면 이만 저만 아까운 게 아니지요.


올해 제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게 되면 차를 타고 가는 날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 주차장에 로체 뿐 아니라 니로도 하루 종일 멍하니 서 있을 것이네요. 그래서 머뭇거리던 일을 수행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로체를 중고차로 판매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내는 계속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하지만 "장고 끝에 악수"라고 믿는 저는 바로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 상담을 신청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최소 며칠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상담 신청 후 1시간도 안 되어서 3~4곳의 딜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미리 중고차 시세를 알아보기는 했지만 연식이나 주행거리, 여러 번의 사고로 인해 상당히 낮은 가격을 제시하더군요. 차를 살 때는 비싸게 사지만 팔 때는 싸게 파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서운하기는 합니다. 어차피 팔 차이니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딜러에게 연락을 하여 진행을 부탁했습니다.


로체의 경우 국내에서는 중고차 판매가 어렵기는 하지만,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수출 수요는 높은 차종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이 되었는데요. 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딜러에서 제시한 금액에 만족하면, ② 차량 등록 말소 준비를 위해 차량 소유자의 신분증과 차량 등록증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③ 그리고 바로 탁송 기사분이 오셔서 차량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고 딜러에게 연락하면, ④ 제 통장으로 합의된 금액을 받는 것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은 마무리됩니다. ⑤ 이후 중고차 딜러에서 '자동차말소등록사실증명서'를 보내오는데 한국에서는 폐차가 진행이 된 것이고, 이제부터는 수출을 위한 절차가 진행이 될 것입니다. 모든 절차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거의 유사하리라 보이네요.

차량 말소 등록증.png [자동차말소등록사실증명서]



로체에 있던 짐을 모두 뺀 후 스마트 키 2개 모두를 탁송기사님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시동이 걸린 로체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서 고마웠습니다!

로체 떠나는 모습.jpg [떠나는 로체]

16년 넘게 함께 한 자동차인데 정말 한 순간에 떠나보냈네요. 중고차 판매 문의를 한 것이 9시인데 로체가 지하주차장을 나가는 시간은 11시입니다. 로체를 떠나보내는데 까지 딱 2시간이 걸렸고 말소등록까지는 6시간이면 충분했네요.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만에 모든 처리가 완료된 것을 보니 한국의 업무 스피드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차량 소유보다는 공유를, 그리고 운전면허 취득도 잘 안 한다고 합니다. 라이드 헤일링이나 카셰어링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기도 하고, 차량 구매와 보유로 인한 비용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차량의 증가세도 줄어들고 있고 미래 자율주행차량의 운행이 현실화되면 또 어떤 변화가 사회를 흔들지 모르겠네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

글쓰고 달리고.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