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 2025
시를 읽으면서 장례식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의 유언이 재산분배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 장례식에 참석불가인 블랙리스트를 아들에게 미리 말하다니 웃픈 일이다. 그만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핸드폰이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사고사를 당하면 연락처가 잠겨있어 애타는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내 생의 종착점에서 진심으로 흐느껴 울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착하게 살면서 큰 덕을 쌓으면 되는 것일까? 부처님의 법문처럼 고집멸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죽어도 죽지않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은 어떨가?
시인의 아버지 박상수님은 왜 고모인 박상미를 못오게했을까? 너무 슬프게 우는 동생의 모습이 안스러워 보기 싫었던 것은 아닐까? 죽음은 인간에게 당면한 삶의 종착지이자, 내면에 잠재된 외적세상으로 돌아가는 시작점이다.
장례식장에 모여 흐느껴 우는 지인들속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시인의 지인으로서 장례식장의 문상객이 되어 아버지의 슬픔을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