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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Dec 21. 2023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제자리

 오랜만에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 사실 지치거나 다시 안 좋아지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싫었던 건 아니고 조금 바빴습니다.

학교를 가고,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에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 활동에 참여하고 아침에는 매일 산책 후 식사까지 챙겨했습니다. 저녁엔 유도도 배우고 매주 금요일 오후엔 상담도 받으러 다녔습니다.

팀플 회의나 자료조사, 학기 중 중간, 기말 시험공부, 영어 말하기 앱도 소소하게 이용하면서 정말 바쁘게 보내느라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제는 센터에서 마지막 활동으로 하남스타필드 스포츠몬스터를 갔습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농구였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까지는 축구를 엄청했고, 중3 때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는 농구를 했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꽤 좋았어서 농구부도 했었습니다. 꽤 좋았다는 말이 너무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체육대회에 늘 마지막 주자로 계주를 뛰고, 중3 때 100m 기록이 12초 05가 나왔고 팔씨름도 항상 학교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들곤 했었습니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는 훈련병 250명 중에 12등을 해서 포상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하루에 두어 명 정도밖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는 스포츠 몬스터의 360도 스윙을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알만하게 설명이 됐으리라 봅니다.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나의 좋은 점을 스스로 상기해 주는 것의 일환으로 표현을 일부러 좀 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던 저였습니다. 그런 저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얼마동안은 근처 아주 작은 놀이터에 농구를 하러 다녔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더 악화가 되었을 때쯤에는 저는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일부러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유지된 바람에 언젠가 하게 될 자살이 실패하는 민망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울증의 증상이었다 생각합니다.


 다시 하남스타필드로 돌아와, 저는 그렇게 8년 만에 접었던 농구를 했습니다. 농구공을 잡고 드리블을 하고 슛을 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날 것도 같았습니다. 제가 여전히 농구를 잘했고, 자세가 나왔고 슛이 들어가고 기술들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좋아했던 공놀이를 하는 그 감각들이 미친 듯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죽이려고 했지만 죽이지도 못하고 죽은 듯이 비굴하게 연명만 했던 그 긴 시간이 지나고도 제가 여전히 농구를 잘할 수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갇혀 지내다 방목된 소나 유인원들이 신나서 뛰쳐 노는 모습처럼 저도 신이 나서 제가 즐겨하던 기술들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센터의 다른 청년분들과 경기를 할 때에는 목이 아플 정도로 뛰면서도 예전의 어릴 때의 건강한 저로 돌아간 그 감각이 너무 벅차고 황홀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네요." 그건 제 성격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저는 농구를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비단 머슬메모리뿐 만 아니라 스스로 수없이 짓밟 더럽고 외면했던 제 여러 성격적인 강점들도 고맙게도 아주 길고 추운 겨울 땅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제 마음에 따뜻한 햇살과 함께 봄이 찾아오자 기적처럼 다시 피어났습니다.


 허리가 아파 찾아간 병원의 도수치료 선생님은 또 이런 말을 하셨었습니다. "거기가 제자리인가 봐."


 부상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생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제 상황(10년 만에 대학에 재입학해서 공부 중인 학생이라는 것, 운동 중인 것)을 말하게 되었었습니다. 덧붙여서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좀 알게 된 것 같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요즘은 마음이 되게 편해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선생님이 하신 말이 "거기가 제자리인가 봐."였습니다. "네?" 알아듣지 못한 제가 애매한 반응을 하니 "편한 걸 보니 거기가 원래 자리인가 봐."라고 다시 말해주셨습니다. 또 10년이 날아갔지만 아직 젊으니까 그것들을 알게 됐다면 앞으로 오히려 더 빨리 가게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나약하고 한심한 아래 세대 놈들, 못난 놈으로 보지 않고 제 인생에 덤덤히 응원을 보내주는 어른의 진심에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잘 참고 저도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하고 짧고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나 봅니다.  


 제가 활동을 시작하고 면담을 하면서 처음 들었던 말 중 하나인 자기가 자신을 수용해 주면 남들도 수용해 준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10살을 소위 '똥꼬로 처먹은' 저를 용서해 주기로 했습니다. 너무너무 부끄럽고 괴롭고 그것 때문에 더 은둔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게 저고, 제 인생인 것을 받아들였고 아직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것을 표현하고 소통했더니 이렇게 사람들도 그저 저를 하나의 인생으로 봐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제자리"



1          본래 있던 자리.      


2          위치의 변화가 없는 같은 자리.      


3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도망치고 회피하면 결국 도착하는 곳은 '제자리' 라던데, 저도 10년을 돌고 돌아 다시 대학 2학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대학 생활 한 학기 중 중간중간 다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어렵고 무섭고 힘들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아니, 제가 애쓰고 잘한 덕분에 한 학기를 큰 탈 없이 잘 마무리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제가 대견합니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앞으로도 힘내봐야겠습니다. 저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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