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지원 프로그램과 운동, 산책
10년을 방 안에만 있었다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나 100년만에 깨어난 냉동인간에게 그러하듯 사소한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전부 도전 거리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때에 맞게 배워나갔어야 했을 것들을 한 번에 몰아서 배우려니 버겁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내 불안한 눈동자나 우울한 표정, 옷차림 같은 것들이 방 바깥의 사람들에게 제가 폐인인 것이나 무직 백수임을 눈치채게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30대 남자는 얼굴만 봐도 직업이 보인다.' 같은 말들이 자꾸 겁이 나게 만들었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두려움이나 실패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어 10년을 숨어 지내다 10년이나 걸렸지만 학교 재입학을 하게 된 것이 변곡점이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가족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줄 형편이 되었고, 집에서 떨어져 나오니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조금씩 꿈틀거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스스로 혼자 이곳저곳 다니면서 인간 기능 재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고려대가 가까워서 캠퍼스 구경도 할 겸 고려대를 갔을 때였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서울시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사업에 대한 라디오 홍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 의지가 혹시 꺾일 때를 대비해서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청을 했었습니다.
선정 면담을 하기 위해서 센터를 찾았을 때 저는 복지사 선생님께 저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가운데 '그 시간이 oo님한테 필요했던 시간일 수 있어요.'이라는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냥 날려 버린, 의미 없이 먹어버린 나이나 불어난 숫자가 아니라 그 시간이 저한테 필요했었다는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이전에 저였다면 그런 말은 합리화일 뿐이라고 정신승리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저는 이제는 제 고집을 피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위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센터에서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여러 활동들을 지원해 주시는데 그중에 시간이 맞는 것들을 참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프로그램 활동도 하고, 다른 청년들과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밥도 먹고 하다 보니 참 재밌고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결국 사람의 행복은 돈도 돈이지만 건강과 사랑, 가족, 친구, 함께 하는 기분 좋은 식사나 시간 같은 비정량적인 가치라던 듣기 싫은 잠언들을 체감을 통해 믿게 되었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고 똥과 된장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데 10년이나 걸렸습니다. 선정 면담을 해주셨던 복지사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됐을 때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oo님은 끝장을 보고 오셨으니까 다시 시작하셔도 뭘 하든 잘하실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방에 있는 동안에도 제가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인 건 알았습니다. 어릴 때 여러 가지 끈질긴 노력을 통한 성공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렇게 고집 센 저는 다시 살게 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10년이었나 봅니다. 이제야 아주 조금 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