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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01.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부끄러움

 교수님과의 식사 후, 캐리어에 안 입는 옷 같은 짐을 싸서 들고 복지관으로 향했다. 복지관에서의 모임 이후 바로 누나 집에서 고향집으로 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됐다.


 올해의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이 12월 20일 부로 종료된 이후 첫 비공식적인 모임이 복지관에서 있었다. 이 비공식적 모임은 귀엽고 멋진, 대찬 청년 분이 사업 종료 꽤 오래전부터 미리 복지사 선생님들과 연계하여 준비한 것 같았다. 참 존경스럽다. 그리고 준비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됐을 때도 "너무 멋있어요, 대단하세요." 직접 말씀도 드렸었는데, 자기가 사업이 끝나면 또 방에서 혼자돼서 지금 같은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될까 겁이 나서 자신을 위해서 추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절박하셨던 것이든, 추진력이 강하셨던 것이든 뭐가 됐든 간에 나는 이 분이 열심히 싸우는 분이셔서, 대차고 착한 분이어서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모여서 여러 가지 소소한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규범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조율을 마친 후 파할 때였다. 공식 프로그램을 할 때도 테이블 위에 간식을 먹은 후나 식사를 마친 후 뒷정리를 잘하지 않는 청년분들이 계셨었고 나는 그때마다 몇몇 청년분들이 아무리 기쁜 마음으로 하시는 것이라 할지라도, 남들보다 과중한 책임을 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날도 역시 뒷정리를 잘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잘하지 않는 분들이 계셨고 나는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넣고 나름 마무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몇 분들과 어울려 1층으로 내려왔다가 캐리어를 두고 온 것을 기억하고 다시 5층으로 되돌아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이삭 줍는 여인들을 마주쳤다. 정확히 세 명이서 허리를 굽히고 내가 쓰레기를 모아 버려 놓은 파란 쓰레기통과 다른 쓰레기통들을 비우면서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통을 씻고 계셨다. 그분들은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자격으로 지원 사업에 참가해서 언제나 자발적으로 남들보다 기꺼이 더 봉사하셨던 분들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망연자실하게 그냥 서서 쳐다봤다. 그렇게 그들을 신경 쓰는 척해놓고 또 남겨놓고 떠나버린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알 수가 없었다. 죄책감에 "아이고.."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하면서 횡설수설도 했던 것 같다. 입이나 놀리지 말고 그냥 거기서 바로 소매를 걷고 같이 치웠으면 되는 걸. 멍청한 놈.


 그분들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우리 엄마만을 보더라도 아무리 가족들을 무한하게 사랑해도 봉사가 오래되고, 축적되면 몸이 힘들어서 마음도 지쳐갈 수밖에 없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 것인데.

집에 와서도 그 얼굴들이 며칠 동안 내 양심을 괴롭혔다. 그들을 기쁘게 만들던 선량한 봉사심 사람들의 무도함에 대한 탈진과 실망으로 인해 말라가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음번에는 뭔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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