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연구실에 있으니까 밥 먹고 싶으면 오세요. 얘기도 하고 그래요."
시험 전 조직행동론 마지막 강의를 마치시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주로 시험 범위나 시험 출제 경향, 인생 이야기 같이 강의 외적인 내용들의 교수님 코멘트를 따로 적는 메모장을 켜서 '621호. 방학. 12시 전 찾아갈 것'이라고 남겼다.
교수님 연구실 621호 문을 똑똑똑 세 번 두드리고 열고 들어간 것은 12월 27일 11시 50분이었다. 12시면 식사를 하러 혼자 출발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그전에 미리 와있어야 엇갈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10분 전이면 적절하다 생각했다.
연구실 문을 열러 출발하기 전 기숙사 방에서 했던 생각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위험 추구 :
1. 시험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적 처리 때문에 바쁘실 수 있는데 오늘 가는 것이 적절할까?
2. 안 계시면 어떡하지?
다행히 도서관 쿠키 일 이후로 발전이 있었는지, 나는 내 위험회피 생각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나 걱정을 멈추고 '그래 그냥 가보고 안 계시면 말지 뭐' 하고 곧장 방을 나섰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리고 밥 먹으러 왔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신 채 용건을 탐색하고 계신 교수님께 "방학 때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셔서 진짜로 한번 와봤습니다."라고 설명드렸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한번 와봤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부적절한 표현이었는지, 저렇게 말했다는 게 충격이다.
다행히 교수님은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생겨서 그러셨는지, 진짜로 밥 먹으러 오는 학생의 존재가 재밌어서 그러셨는지 화색으로 반겨주셨다. 그리고 내가 잠시 앉아 있는 동안 책상을 정돈하시고는 '가자'고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이름이 뭐냐, 종강하고 뭐 하고 지내냐고 물으시길래 아무개라고 합니다, 책도 읽고 좀 쉬고, 인생을 즐기고(산에도 갔고, 연극을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크리스마스도 알차게 보냈으니) 있다고 대답했다.
즐긴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몇 학년인지 물으셨고 2학년이라고 했다. 그럼 즐겨도 된다고 하셨을 때 제 발 저린 나는 매를 들어 내 엉덩이를 스스로 먼저 때렸다. 교수님은 히키코모리가 뭐냐고 물으셨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각자 손잡이에 기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에서 안 나오고 은둔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생활에서 교수님과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어떤 루트로 성사되는 것인지도 궁금해서 오게 된 것도 있고, 제 사정이 이러한데, 전문가에게 저 같은 사람이 평범하게 취업하고 일을 하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사실 처음 뵀을 때부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아서 왠지 모를 정이 갔어요.' 가장 큰 동기는 빼고 말씀드렸다.
"너 같은 애들이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어. 사람들에 치이고 찌든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에 지치고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거든. 취업을 하려고 한다면 대기업은 신입사원 나이 제한이 있으니 안될 거고 공기업은 준비해 볼 수 있겠다"
교수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희망적인 답변들은 굉장히 내 예상 밖이었다. 감사했고 용기가 됐다. 잘 새겨들으면서 강의 때 말씀하셨던 교수님 픽 식당에 가보고 싶다니까 학교 후문 쪽 외대 근처의 부대찌개를 먹으러 가자셔서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교수 픽 식당이라는 건 사실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특별할 건 없었다.)
걸어가는 동안 나는 교수님께 내 과거를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교수님도 재밌는 이야기를 들으신다는 듯 껄껄 웃으셨다. 나는 순간 내가 너무 평범한 인간이 되어 있고, 거리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인간들 중 한 명이 된 듯 느껴지는 것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좋았다. 진보적으로 말하면 행복했다고 할 수도 있을.
교수님이 우연히 개업 첫날 방문한 후 종종 가신다는 '일층집'이라는 부대찌개 집에 도착해 손님으로 가득 찬 매장 안을 보며
"여기 맛집이네요!"
"여기 잘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예쁘장한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하게 눈을 맞추며 주문을 기다렸지만 주문은 교수님이 하실 거예요. 교수님은 식사와 355ml 업소용 콜라 한 캔을 주문하시면서 가끔씩 이 조합일 때 콜라를 마시는데 두 명에 이거 하나를 먹으면 딱 좋다고 하셨다. 교수님의 힐링푸드시냐고 저는 닭강정에 맥주나 콜라가 힐링푸드라고 지나가는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무슨 얘기를 꺼내보기도 전에 교수님은 육아의 고통을 토로하셨다. 힘들어서 악몽까지 꿨다 말씀하실 때 강의시간에 들었던 5살, 4살 연년생 남자 형제가 떠올랐다. 은퇴가 10년 남으셨다는 평소 이야기로 미루어봤을 때 굉장히 힘든 육아를 하고 계실 것은 분명했다.
육아의 고통과 악몽 이야기 이후에 교수님의 여러 일상이야기들을 들었다. 또, 불안한 생각과 나에 대한 의심을 계속 가지다 보면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다고 조언도 해주셨다. 그리고 단순 궁금증에서 나온 질문도 몇 가지 드렸다. 종강 때마다 매번 학생들에게 방학 때 밥 먹으러 연구실로 찾아오라고 하시는 건지, 학생들이 얼마나 좀 오는지 여쭤봤다. 아무도 안 온다고 하시면서 그러다 한 번은 여학생이 왔었는데, 여학생의 본가가 교수님 고향 집 맞은편 아파트였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도 신기한 부분이다 생각했다.
대기만성.
일본에서 유학을 하셨고, 돌아와 학교에서 축구선수를 하셨던 교수님의 외조부님에 대해서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외할아버지가 나한테 '너는 대기만성형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뒤에 있는 사람 무시하지 말고 앞에 있는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자기 페이스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하시곤 하셨다고 한다. 식탁 위로 턱을 괴고 추억에 잠긴 교수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잠깐의 침묵 뒤에 교수님은 외조부님 에피소드의 결론으로 처음부터 나에게 해주고 싶으셨을 말에 다다랐다.
"너도 대기만성형인 거 같다."
"감사합니다."
감사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때 뻔한 결론을 예상하지 못하고 이야기에 몰입한 채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가자."
교수님은 일어나서 계산을 하고 사장님께 전에 있던 알바는 어디 갔냐고 물으셨다. 사장님은 그 친구는 군대 가기 전에 좀 쉬고 싶다며 그만뒀다고 했다. 그리고 부대찌개집을 나와 교수님은 내가 다녀보지 않은 길로 경영대로 향하셨고 나는 옆에서 따라갔다. 그리고 건물 1층 입구에서 헤어지며 교수님은 다음에는 그 부산 여학생이 왔을 때 갔던 순댓국집에 가자고 하셨다.
"1월에 한번 더 밥 먹으러 와."
"예. 교수님 또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악수를 하고 나는 옆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내가 대기만성형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즐거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와 함께 계단을 통통통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