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과 이런저런 생각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밍밍한 끝이었다. 나의 대학교 3학년 생으로서의 24-2학기는. 금요일인 오늘, 강의 두 개를 들으면서 시험 전 모든 수업이 끝이 났다.
지난 학기도 학업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더 커다란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어느 정도는 열심히 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각 강의들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순간에는 '끝났다!', '끝이 났구나!' 하는 강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 '무언가'라는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은지 지금은 도무지 모르겠다. 정말 힘들게 달려와서 트랙의 하얀 천으로 된 피니시 라인을 배로 밀치고 나가는 기분 같은데. 근데 오늘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애정이 깃들지 않은 것인지, 종강 자체가 대수롭지 않아진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번 학기는 교수님들의 교수법 스타일 때문에 학습에 어려움을 겪은 과목이 유독 많았다. 14년 전 신입생이던 시절 시험지를 백지로 내고 F를 맞았던 과목도 그런 이유가 최소 반 정도는 있었는데, 그 시절 생각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나이를 먹었다고 이번에는 그렇게 철없게 대처하진 않았다. 참고 최대한 재미 붙여 가며 공부했다. 공부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학습효과가 최상으로 발휘되는 법인데 나는 교수님과의 상성이 안 맞아버릴 때 학습 의욕에 치명적인 감퇴가 온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에게서 내 기준에 안 맞는 모습을 보게 되면 두 번의 기회 없이 마음을 먼 곳으로 떠내려 보내는 기질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 것 같다.
8년 만에 재입학한 후로 세 학기째이기 때문에 이제 이렇다 할 새로운 어려움도 없기 때문일까. 학교 생활이 권태로워진 면도 영향을 줬을 수 있겠다. '성적을 잘 받는 일'을 해봐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듯 분명한 원인을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나는 마지막 수업을 들은 후 싱거운 감정으로 강의실을 나왔다. 나는 그게 뭔가 서운했다.
나나,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소한 현대 문물 하나하나까지 적응해야 됐다 보니 나는 코앞의 문제들로도 인생이 벅찼다. 근데 이제는 그런 것들에 적응을 어느 정도 마쳤고 문제였던 것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본능을 가졌는지 나는 문제를 찾아서, 불안을 찾아서 미래를 향해 망원경을 들고 보게 됐다. 이것이 본능이든 저주이든, 잘 거슬러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불안이 찾아오는 이 구조에 대해서 예전에는 불안이 병원 대기표를 뽑고 자기 순서만 기다리는 내원객들 같다고 글을 썼었다. 반복을 겪고 있었구나 싶다.
아름다운 무언가가 생산될 때는 그 부산물로서 약간의 추한 것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다. 긍정적인 것이 생겨나면서 부정적인 것도 따라붙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 긍정적인 것의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눈곱만큼도 되지 않는 추한 것, 부정적인 것에 나는 어느 순간 더 집중하고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고 있으면 언제나 쉽게 그렇게 돼버리는 것 같다. 중요한 건 막대한 행운과도 같은 것, 긍정적인 것을 얻게 됐다는 사실이다. 초점을 늘 이곳에 둬야 한다.
부정적인 부산물들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낸 후의 찌꺼기라고 생각하니 그마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도 아닌 것 같고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두부 만들고 남은 비지로 찌개를 끓여 먹듯 감정의 부산물들 가지고도 야무지게 요리해 먹을 방법을 찾으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