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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Dec 17. 2024

시험 기간 중 가장 힘든 것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게 제일 힘들다.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든 랩탑을 펴든 시험공부를 해야 되는데 몸뚱이는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고 머릿속의 나만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가슴에 찾아온 스트레스를 통해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는 걸 상기하게 되었다. 요즘 아침에 침대에서 몇 번은 일어나서 할 걸 했고 몇 번은 그대로 누워있기도 했다. 누워있을 때는 비폭력대화에서 배웠던 '그래도 충족된 욕구가 있어.'를 생각하거나 충분히 누워있다 일어나서 졸리지 않는 몸을 생각했다. 일어날 때는 명상록의 '편안하기 위해서 태어났는가?'와 함께 몸이 조금 피곤하긴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편안한 마음을 떠올렸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마음이 편안한 게 나에게는 가중치가 있는 것 같고 일찍 일어나느라 졸리면 잠깐잠깐 엎드려 자자 싶다.  


이번 기말 시험 기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분량, 내용, 교수법, 강의자료, 멘탈 등의 문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오늘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면서 보니 그냥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분명한 이유라는 걸 알았다. 나는 절실하게 하고 있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있는 여학생의 교재의 상태집중력을 유지하는 모습을 나와 비교해 보고 알게 되었다.


은둔고립 생활하다가 그냥 다시 살아보겠다고 재입학을 한 건 맞다.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진로 고민도 없었다. 성적이고 나발이고 그냥 졸업할 때까지 도망치지 말고 학교 다니면서 밖에서 살아보자는 목표였다. 근데 그렇다고 여전히 방에서 나올 때의 그 소박한 목표만 성취하면 된다는 것을 시험공부 덜 해도 될 구실로 삼으면 그것도 회피 아닐까? 아니면 정말 회피가 아니라 현명하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까?  


적당히 유지하면 되겠다 싶다. 스스로 알도록 최선은 치열하게 다 하고, 힘들 때는 관점을 처음 목표로 가끔씩 다시 가져가보는 것이다. 그럼 불안한 감정이 다뤄질 것 같다. 시험은 확실히 스트레스가 된다. 불안감이 좀 찾아왔었다. 그런 기분에 휘둘리는 대신 관점을 바꿔주는 말들을 머릿속으로 많이 생각했다. 학교 강의나 고립은둔 관련 프로그램에서 배워둔 것들이 도움이 된다.


한 것 목록

1. 코칭 4회기 과제 보고서

2. 협회장님과 방학 중 코칭 일정 조율  

3. 방학 중 근로표 제출

4. 보험학원론 두 바퀴

5. 방학 중 공기업 취업 관련 특강 신청 선정

 

하기는 싫고 머리만 복잡하게 만드는 해야 할 것들은 역시 해서 쳐내는 게 직빵이다. 전에는 그것들이 내가 느끼는 심리적 난이도에 비해 실제 수행 난이도는 낮은 것들이었다. 대체로 그냥 좀 부끄러운 것을 직면하는 일들이 많았다. 지금은 학업이나 진로에 관한 문제들이 해야 할 것들 목록으로 올라와있다. 마음만 바꿔먹으면 해결할 수 있던 도전 과제들에서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한 문제들이 찾아온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노력의 양이 늘었다.


자존감이 없었던 나란 인생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작은 성공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키워가는 과정에 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왔다는 증거로 생각해야겠다. 잘해봐야겠다. 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다. 시험칠 수 있다. 졸업할 수 있다. 무경력, 무이력 서른 중반 아저씨여도 일할 수 있다. 사랑할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다.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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