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유치원에서 함께 일했던 A로부터 LH나 SH 임대주택 관련 정보를 작년 초에 처음 접했던 후로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신청까지 해 볼 동기가 없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지난 후 자취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신청을 알아본 것이 작년 연말이었다. 그랬더니 12월 31일까지 마감인 LH청년전세임대 수시모집이 있어서 일단 부리나케 신청을 했다. 그리고 1월 둘째 주쯤이었나 선정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안내문은 아무리 읽어봐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안내문, 공고문 등을 읽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처음 접하는 분야이다 보니 이해가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계약은 선정으로부터 9개월 안으로만 하면 된다니 천천히 알아보자 싶었다.
근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메시지와 카톡으로 25-1학기 기숙사 합격자들을 안내하길래 내가 신청을 했었나 알아봤더니 나는 다음 학기 기숙사 신청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신청 기한은 이미 12월 중에 지나있었다. 12월에 정신이 없긴 했었던지 기숙사 신청을 할 생각도 못 하고 넘어가버렸다. 한두 가지에 너무 몰입하느라 유독 12월에 기말고사가 끝나고 했어야 할 것들을 많이 놓쳤고, 그랬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구정 연휴 때나 돼서였다. 몰입하던 것이 없을 때에는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늘 신청을 잘했었다. 그래서 '내가 멀티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심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내 지능은 이 정도인가 싶었다. 그래도 그렇게 될 만큼 몰입을 한 일이 있었던 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기숙사는 당장 2월 18일까지는 나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LH매물을 찾아야 했다. 권리분석 과정과, 계약이 이루어진 후에도 최소 3주 후 잔금지급이 되고 잔금 지급 후에 이사 갈 수 있기 때문에 기숙사 퇴사 후 기간이 뜨는 건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누나 집으로 짐을 옮기는 것과, 그 집에서 통학을 한 달 정도 하게 될 걱정에 가슴이 답답했다.
어쨌든 LH 매물을 빨리 찾아야 하루라도 이사를 빨리 가기 때문에 부동산을 직접 찾아다녔다. 전세임대포털이나 네이버부동산으로 찾는다고 찾아봐도 전화를 해보면 이미 그 매물이 없거나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동네 부동산에 전화를 돌릴 때도 중개사분에게 "LH매물 있을까요"하면 "없어요." 하면 끝이라 그것도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그냥 여러 가지 일로 속도 어지럽고 해서 바람도 쐴 겸 동네 부동산 투어를 다녔다.
집을 구하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겁이 나기도 했는데 누나, 형 등만 따라다니면서 편하게 가려는 심보는 이제는 진짜로 청산해야 할 것 같아서 도움받지 않고 혼자서 해봤다. 학교들 근처라 그런지 부동산도 엄청나게 많았다. 늘 다니던 길들에 부동산중개사무소가 그렇게 많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보려고 해야지 보이는 구나.' 싶기도 하고 신기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LH매물을 찾는다고 설명하면 중개사로부터 대부분 칼같이 "없어요."라는 말부터 돌아온다. 그리고 중개사분들은 적당히 난색을 표하면서 왜 매물이 없는지 설명하시곤 했다. LH전세임대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 섞인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귀찮게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거나, 눈을 낮춰야 한다거나 하면서 훈계를 하기도 했다. 아니면 자기가 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는지나 자식 자랑을 하기도 하고.
빨리 다음 옆 부동산을 가보고 싶은데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비슷한 내용의 말들을 들어야 했다. 어쨌든 LH매물이 찾기 힘든 이유는 일반임대를 놓는 것보다 집주인들에게는 너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게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잘 나가지 않는 집이나 LH로 놓게 된다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겨우 "있다."고 하는 부동산을 찾아서 따라가 보면 반지하거나 너무 좁거나 오래됐거나 했다.
그나마 찾은 매물을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없어질까 하는 조바심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봤던 반지하 집을 바로 덜컥 계약하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았다. 마음속에서는 계약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주장들이 몇 올라왔다. 하지만 집을 알아보고, 찾아보고 하기 싫은 마음과 집을 찾으러 다니고 거절당하러 다니는 과정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무래도 더 큰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겁먹고 약한 소리 하는 내 목소리를 무시한 것은 잘한 것 같다. 어떤 중개사분은 빨리 계약해야 한다며 고민하는 동안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그랬는데 다른 부동산에서 같은 매물에 대해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아니라고 설명해 줬다.
첫 시도이다 보니 비교 데이터가 없어서 중개사무소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지 말지 정하는 게 확실히 어렵긴 했다.
LH청년전세임대는 전세 대출금 이율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올전세가 유리했지만 올전세 집들은 상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다 싶은 집들은 다 오피스텔이거나 보증부월세에 관리비도 비쌌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실망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또 회기역의 반대편에 있는 골목에서 부동산을 들락거리기를 몇 번 반복한 후, 전세금이 싼 보증부월세 집을 보러 가게 됐다. 집은 좁고 옵션도 몇 개 없었지만 도배, 장판이 깔끔하고 창이 크고 남향이었다. 방을 보고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계약서 가지고 왔냐"며 채근하는 중개사분의 말에 고민해 보겠다고 하고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가계약을 했다. 빛이 잘 드는 집을 계약하게 된 이유 중에 내 오렌지레몬나무 화분도 한 몫했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다.
보통 중개사무소에서 먼저 계산해 보고 권리분석 승인 떨어질 집만 낸다고 하지만 운이 없으면 승인이 안될 수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가계약한 집은 직전에 한번 탈락해서 집주인이 LH지원금이 얼마가 나오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전에 한번 검사했던 집이라 그런지 권리분석도 3일 만에 결과가 나왔다.
그런 상황이라면 승인이 무난히 될 거라는 걸 알고 기다렸지만서도, 다른 이런저런 걱정이 또 찾아왔다. 집 상태가 더 좋은 조건이거나 전세금이나 월세, 관리비가 더 이득인 조합의 집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면 나와 동일한 조건으로 집을 구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괜찮은 집들도 많아 보였다.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걸 생각했고, '유튜브니까 괜찮은 것만 올라오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법칙.
권리분석 승인 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서 계약일을 알려줬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법무사, 임대인, 나, 공인중개사가 사무소에 모여 계약을 진행했다. 몸이 안 좋으신 아버지의 후견인으로서 온 임대인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후 미국에서 공부를 했지만 소용없다면서 경영학과가 취업하기 좋다는 말을 내게 해줬다. '컴퓨터공학과라...' 하는 생각에서 처음 반지하집의 집주인 할머니도 그렇고 이 분도 그렇고 집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여러 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그러니까 부동산에서 만나게 되는 거겠지만. 아버지로부터 빚이나 물려받지 않으면 다행인 나로서는 '내가 지금 주눅이 들고 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가슴 아프게도 아무렇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만 자기 집 하나 가지는 것이 뭇사람들의 꿈인 이유를 아련히 알게 된 것만 같았다.
계약을 하고 나니 이제 이삿짐을 옮길 걱정이 본격적으로 들었다. 다행히 기간이 뜨는 것은 집주인분과 협의해서 기숙사 나가는 날부터 월세를 내고 살기로 했다. 이삿짐에 며칠 동안 계속 신경이 쓰여서 그냥 오늘 미리 용달 계약을 했다. 이사 갈 곳이 기숙사와 3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숨고와 다마스 이사 같은 걸 훑어보기도 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보고 알게 된 곳에 맡겼다. 4천 원 차이로 가장 저렴했다.
연초에 나를 힘들게 하던 여러 앓던 이들 중 몇 개가 빠졌다. 여전히 의욕은 없지만 이제 그나마 좀 살 것 같다. 사랑니 네 개는 모두 빼지 않아서 여전히 썩은 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지만.
작년에도 참가했었던 VR 운전과 관련된 실험에 며칠 전 또 참가를 하기도 했고, 컴활 실기 공부를 절망 속에 하고 있기도 하다. 임대차계약을 한 토요일 오후에는 형이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올라온 김에 큰누나와 같이 셋이서 만나 카페를 갔다가 저녁을 먹었다. 종각역에서 모였는데 탄핵 찬반 집회 행렬을 모두 만났다. 들어갈 땐 반대 행렬, 나왔을 땐 찬성 행렬.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 속 활자가 아닌 여백 쪽에 서서 구경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니까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큰누나는 불안증이 심하면 자기처럼 병원 가서 약을 타먹으라는 말을 해줬고 형은 "슬럼프를 잘 극복하시오."라는 말을 해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형은 헤어질 때 자기가 사 온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베이글을 나와 누나에게 두 개씩 나눠줬다. 베이글은 내가 좋아하는 빵은 아니지만 저번에 줄이 길어 그냥 지나쳤던 적이 두 번 있기 때문에 형 덕분에 먹어보게 돼서 기뻤다.
오렌지레몬 하나는 어제 움켜쥐어보니 운향과 특유의 냄새가 확 올라와서 단번에 침이 고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일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