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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잡생각

by 온호

놓친 줄도 모르고 있던 것을 오늘 하나 더 알게 됐다. 충격이었다. 마음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이 있었지만 최근 그런 일들을 연속적으로 겪고 있다 보니 이제는 화내고 슬퍼할 기력조차 없는 것 같다. 고통을 겪으며 이것들이 다 내가 모자라서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지금 내 책상에 붙어있는 분홍 포스트잇 중 하나를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고통을 겪을 때 생각해야 할 건 고통은 수치가 아니고 지성을 타락시키지도 않는다, 고통에는 한계가 있으며 상상으로 과대평가만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를 위해 내가 남겨둔 문장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뭔가 애닯다.


사람은 감정 부분에서 이미 어떤 결정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는 그것을 합리화할 뿐이라는 것을 배웠었다. 그리고 요즘 나도 감정이 이미 내려놓은 결정들에 갖가지 미사여구나 대의로 포장을 했었던 것들이 참 많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불현듯 그랬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대부분 귀찮아서 그랬을 뿐인 것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해 나 자신까지도 속이거나 그랬다. 내 그릇이 참 작다는 게 느껴져서 쉽지 않았다.


내 정체나 본질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딱 요즘인 것 같다. 내 행동 동기의 대부분은 타인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나 스스로 순수하게 추구했던 것이 과연 있나 싶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 오던 것보다 내가 참 게으르고 의지가 약한 것 같아 실망했다. 그래도 결국은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맞이해 보려고 생각한다. 내가 찾은 답이었으니까. 괴로움과 외로움.


오늘은 힘들어하던 친구를 만났다. 순서는 기억이 안 나지만 sympathy, empathy, compassion의 차이와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행동하지 않으면 그 상태가 오히려 본인에게 더 스트레스를 준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행동을 했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나도 힘들지만 누군가 힘들어할 때 '전화라도 해볼까' 생각만 했던 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 봐 철저히 나를 위해 그렇게 했고, 어쩌면 이것도 그냥 놀고 싶어서 내린 결정에 포장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는 특히 더 미화를 하기가 쉬우니까. 내 진짜 동기에 대한 의심은 여기까지만 하고 결과적으로는 친구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 그거면 됐다.


그저께쯤에는 기지개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함께 들었던 청년에게서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왔다. 신기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 다음 날 팔로우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핸들을 보고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그전까지는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커녕 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 이런 경험은 가끔씩 하게 되는데 융의 동시성으로 짧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배우는 게 중요하긴 하다. 길게 설명해야 될 것도 짧게 이름 붙여 말할 수 있게 되니까.


오늘은 구독하고 있는 분의 글이 매일 한 시간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갔다 와서 패딩을 입은 채로 일단 막 쓰기 시작했다. 작은 것부터 부지런히. 아니다. 또 포장인 듯하다. 진짜 이유는 알고 있는데. 나라는 사람의 인간성에 대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따뜻하게 샤워나 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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