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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영향을 받으며 한 생각들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by 온호

겨울에는 당연히 춥고 해도 늦게 뜬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고 일어나서 책이라도 읽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너무 춥고 어두워서 그냥 누워있었다. 겨울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어봤지만 직접 체감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작년 겨울에는 안 이랬는데?'하고 생각해 보면 룸메가 코를 골거나 하니까 그게 힘들어서 빨리 나가서 운동이나 산책을 했다. 또 국가근로로 유치원으로 출근을 하다 보니 생활에 생동감이 있었다. 도서관 근로는 직원과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소통이 없고 꿀인 반면 유치원은 소통이나 교류는 있지만 몸이 힘들었다. 계절도 그렇고 근무지도 그렇고 장단점이라는 것은 참 분명하다.


최근 한 여러 가지 실수들 실패들은 이제 마음에서 어느 정도 털어냈다. 큰누나가 가족 단톡방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의 영향이 있었다. 집에만 있던 시절에 모처럼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가족들의 외출 동행 권유에 늘 수락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었지만 간혹 거절할 수 없는 강력한 명분이 있는 경우에는 외출을 했었다. 가족 구성원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기념일이거나 할 때. 그런 하루의 사진이었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나갔던 기억이 무에서 창조된 유처럼 사진을 보자 살아났다. 사진 속 나는 장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어이가 없고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스스로 지워버리고 죽여버린 나의 어렸을 때의 시간이 가족 덕분에 기록되고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머리는 어릴 때부터 늘 길러보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뭐 하나라도 해소를 하긴 했구나 싶기도 해서 웃겼다. 웃으니 기분도 나아졌다.


어제는 캘린더에 1학기 치 학사 일정을 기록했다. 학교의 여러 부서별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게 됐고 팔로우를 했더니 일정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왜 그전엔 찾아서 팔로우할 생각을 안 했을까? 몰랐기 때문이다. 몰랐다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 간절한 의지가 없었던 것을 덮어두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모르는 줄도 모르던 것을 뼈 아픈 실수를 계기로 알게 되고 배워서 방책을 세웠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수나 실패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건 관점에 따라 단어의 뉘앙스와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내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 가족들이 해준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내 몸으로 매 순간을 살아가야 했기에 걱정거리들이 보였다. 다만 타인이 내 문제를 생각하든 내가 내 문제를 생각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인생에 힘들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시도를 해봤더니 확실히 나았다.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방에서 보내고 나온 후로는 앞으로 인생에 어떤 힘든 일이 찾아와도 꺾여서 넘어져 못 일어나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었는데 생각보다 여유 넘치는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1년 반 만에 찾아온 위기를 겪으며 인생이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호락하지가 않겠다 싶은 것이다. 그래도 버텼다.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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