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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08.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회복 일상

 메인에서 봤던 '브런치에서 가독성 있는 글 쓰는 법'을 읽고 나서 글을 쓰려니 주눅이 든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블로그나 다른 데서 쓰는 게 낫지 않냐', '브런치스토리는 모두가 쉽게 공감할만한 일상적인 이야기가 어울린다.'라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형식적인 부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

하지만 얼마동안 시중에 유행했던 소위 "알빠노"를 시전 하며 내가 브런치를 하는 이유는 그냥 나를 드러내고 글을 쓰며 마음의 안정을 구하는 것임을 상기했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요즘 글을 쓸 때 고민이 되는 것이 있다. 중학교 때 했던 싸이월드에 남겼던 글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여기에 남기는 글들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게 될 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 것이다.

 그래도 글로 남겨두면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어떤 감정으로 지냈는 지를 알 수 있다는 게 좋다는 생각이 늘 줄다리기에서 이기기 때문에 또 글을 쓴다.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으로 만난 청년들과 사업이 끝난 후에도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한 번은 새침데기 남자청년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시도하는데 웬일로 그분이 행복해하며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를 찾았다. 그걸 발전시켜서 '서울유람, 맛집탐방' 동아리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모였다.      


 1월 3일, 새침데기 청년의 추천으로 홍대의 라멘집에서 첫 모임을 진행했다. 7명이 가야 하는데 가게가 넓지 않다 하여 11시 오픈런을 했다. 10시 40분까지 8번 출구에 모이기로 했는데 변명거리는 많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5분 지각을 해서 미안하고 속상했다.


 음식 맛은 라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어도 맛있었다. 다들 너무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갔다. 사실 호스트의 계획은 라멘집까지여서 그 후로는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소금빵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경의선 숲길을 걷고, 오락실을 갔다. 오락실에서는 다트를 처음 해보는 사람끼리 따로 게임을 했는데 내가 1등을 했다! 그리고 다트는 여럿이서 하기에 특화된 게임 같아서 다음에 또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었다.  


 오락실을 나와 연대 캠퍼스 구경을 갔다. 다시 나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계산은 내가 하고 각자 정리를 해서 보내주기로 했다. 저번에 유치원에 지갑을 놓고 와서 같이 근로하는 학생이 카톡 정산하기를 해줬었는데 그때 알게 된 걸 여기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먹은 메뉴나 참여한 일정에 따라 사람마다 액수에 변수가 있어서 1/n 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정산을 오차 100원만 내가 부담하면서 아주 깔끔하게 해냈다. 아무래도 동아리 회장 겸 총무를 하게 된 것 같다.


 저녁으로 피자와 맥주, 치킨, 감자튀김을 먹고 나와서 노래방을 갔다. 밥을 먹고 헤어질지 어쩔지 하다가 하루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자고, 할 거 다 하고 집에 가자고 했다. 진짜 별생각 없이 모였다가 하루종일 놀게 됐다. 그리고 모든 일정은 걸어 다니면서 산책과 대화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도 좋았다. 


 노래방에서 나와 몇몇은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고, 몇몇은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서 영수증을 보며 계산을 했다. 계산은 끝났지만 정산하기는 내일 보내자고 생각했다. 계산이 바로 오지 않아서 기다리느라 불편했을까? 모르겠다. 


 단지 행복한 하루의 끝에 각자의 방에서 돈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일은 내일로 미뤄주고 싶었다. 여운이 흩어지지 않게. 


 좋은 날이었다. '히키코모리도 마음을 열고 방문을 열면 친구가 생기나 보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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