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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08.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본격 근로 시작!

9시 10분 전쯤에 맞춰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와있는 것을 보니 활기차서 좋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이거 맞나..?'

아이들 에너지에 눌려서 아이들 없이 그냥 달력에 스티커나 붙이는 작업을 할 때가 좋았던 건가 걱정도 됐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뻘쭘하게 서있었지만, 곧 근로 학생들은 각자 반을 배정받고 2층으로 이동했다. 나는 백합반(만 5세)에 가게 됐다. 


처음은 선생님께 덤웨이터(이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설명을 들었다. 우유는 22개를 남겨서 올려 보내면 된다고. 손을 씻고 레고를 같이 해주시면 될 거 같다고 말씀하셔서 교실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내 레고 파트에는 여자 아이들 4명이 모였는데, 제일 처음 온 노란 옷을 입은 아이는 레고를 아주 잘했다. 자기 아빠는 레고 천재라며 아빠가 레고로 만든 작품들을 읊었다. 친구들과 조립을 할 때도 지능이 높은 아이 특유의 애어른스러움이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났다. 


두 번째 온 아이는 첫 번째 아이와 피아노학원을 같이 다닌다. 이름도 비슷해서 선생님들이 자주 반대로 부른다며 이야기해 줬다. 나도 한번 실수했더니 "이거 봐요." 하면서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조립은 주로 이 두 명이 주도했다. 


세 번째 아이는 첫 번째 친구에게 잘 맞춰주기도 하고 양보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부분은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고 '나보다 낫다.' 싶었다. 


네 번째 아이는 조용했다. 기 센 아이들에 밀려서 조립을 거의 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거나 자잘한 부품들을 조립했다. 최대한 같이 할 수 있게 도와줬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들 말고도 새롭게 만난 근로 학생이 있었다. 처음으로 남자였다.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나와 같은 과였다. 그리고 심지어 이번 학기에 같은 강의를 들었다. 출석을 부를 때 들었던, 내가 기억하는 이름의 주인이었다. 한 학년이 200명 정도이기 때문에 쉬운 확률은 아닌데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그 친구도 나처럼 밤귀가 밝은데 룸메가 코를 골아서 고생을 심하게 하고 있었고, 방 청소도 나처럼 혼자 한다길래 더 반가웠다. 


'너도 남자인 주제에 섬세하고 미련한 쪽이구나.' 왠지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유치원을 지난 학기에 이어 방학 때도 지원해서 왔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유치원은 다른 근로지에 비해 힘들다고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착한 것 같다.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 정도는 되겠지. 반댄가? 뭐 아무튼.


좋은 학생들이랑 방학 한 달 동안 같이 일하게 돼서 다행이다. 운도 좋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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