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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17.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일상

유치원 근로는 적응이 된 후로 시간이 너무 잘 가서 좋다. 문제는 퇴근 후 내 시간이 너무 없다. 찍어 먹어보는 9 to 6 생활의 맛! 돈도 벌고 우울한 틈도 줄어들고 나름 좋다. 퇴근 후 방으로 와서 밥을 먹고, 소소하게 운동을 한다. 팔 굽혀 펴기 200개 루틴은 시간상 100개로 하향 조정됐고, 산책도 격일 시행으로 횟수를 낮췄다. 다행인 건 근로지에서 12,000 보 정도는 나온다. 


유치원 안에서는 나랑 목소리도 비슷하고, 룸메 청소까지 대신하는 잘 생기고 미련한 남자 근로 장학생(A라고 해야겠다.)과 친해져서 점심밥을 웬만하면 같이 먹는다. 보통 유치원 바로 앞에 학생 식당에서 학식을 먹거나 한다. 그러다 오늘은 자기가 갔던 보쌈집을 소개하며 같이 가서 먹자고 했다. 검색해 보니 그 집이 휴무라 가까운 보쌈집으로 대신했다. 다음에 가기로.


여자 근로장학생 한 분은 감기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A가 안 그래도 저번 학기 근로를 하면서 감기를 네 번 정도 걸렸다고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직원 선생님과 보조 교사 선생님이 늘 마스크를 쓰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감염 경로가 풍부해서 그런가 보다. 나도 마스크를 써야겠다. 


보조교사 선생님과도 퇴근 전 청소를 하면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중"이라고 말 거는 여자 말고는 먼저 말 걸어주는 여성은 이 분 밖에 없다. 내용도 주로 칭찬을 해주셔서 좋다. 그리고 '어떻게 애들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하는 부분과 '체력적으로 어떻게 멀쩡하신지.' 부분을 궁금해하신다. 대답으로는 겸손 떠는 말이나 하고 속으로는 '내가 육아짬이 얼만데' 한다. 대학생 근로장학 선생님 중에 허기워기, 레인보우 프렌즈, 티니핑, 스피커맨, 메카드볼, 흔한 남매 따위를 줄줄 꿰면서 로블록스의 갖가지 게임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남자 선생님은 얘네한테도 귀할 걸요?


그리고 어제는 자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사람들 만나니 웃을 일이 생긴다. 보드게임도 하고. 저녁밥을 지난주부터는 포트럭 방식으로 먹는데 이것도 재밌다. 나는 조리를 못하니 아쉽다. 조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난 뭘 해갈까 고민해 봤다. 


약식으로 만드는 동파육

감자샌드위치, 김풍토스트, 허니버터토스트

볶음밥, 계란말이

감바스, 파스타


내가 집에서 가끔 집밥 지겨우면 해 먹던 메뉴들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운 메뉴가 돼버렸다. 집밥도 그립고.


자조모임이 끝나면 복지관에서 걸어서 기숙사로 향한다. 청년분들과 만나면서 들뜬 기분 뒤에 혼자만의 시간으로 다시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도착해서 씻고 잠도 적당히 설치면서 잘 지낸다. 요즘 수면 점수가 전에 없이 너무 잘 나와서 더 잠자기에 자신이 생겼다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일들과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내 마음을 복잡하고 힘들게 하는 일들과 사람들도 가질 수 있어서 잘 된 것 같다. 그래도 좀 더 행복하고 싶긴 하다. 단계를 뛰어넘으려 욕심부리지 말고 일단은 나부터 사랑해 주자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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