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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18.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잡생각

1. 사람들도 남의 얘기 계속 들어주기 피곤하다. 더 이상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인생의 하소연이나 늘어놓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떤 이야기의 형태로 남겨버리고 털고 싶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할 거 같다. 고향 산에 갔다 왔듯이.


2. 동경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부러움과 질투로 변모해 있었다. 멋진 문이 마음에 들어 열고 들어간 안 밝았었는데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뭔가 까매져 있는 느낌이었다. 까매진 건 나였지만. 고통이 되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의 거리를 조금 벌렸다.


3. 짜계치= 짜장라면 + 계란 + 치즈.

짜계치의 추억이 있는 날.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울어버렸다. 자신의 죄를 바라보는 빛이 없는 눈이 슬프고 아팠다. 수없이 많은 밤과 이른 새벽마다 그 사람에게 찾아왔을 고통들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사람의 신뢰를 얻어낸 건가' 같은 생각은 왜 동시에 드는 것일까. 앞뒤가 맞지 않다. 뭐가 내 진짜 마음인지 혼란스럽다. 눈물이 연기나 가짜일까 봐 무섭다.


4.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좀 공평하게 느껴진다. 원망과 감사.


5. 당신이 사생아로 태어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시오패스라는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자.


6. 치킨 향수. 밤의 캠퍼스에서 친구 둘이서 치킨을 들고 웃으며 가는 모습을 보는데 혼자인 내가 외롭게 느껴지지 않고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 둘을 지나쳐 2미터 정도를 더 가니 걔네가 치킨냄새를 남겨놓고 간 방이 하나 있었다. 샤넬이 말했던 향수를 뿌릴 때는 내 뒤에서 향기가 나를 따라오도록 뿌리라고 한 것이 생각나서 웃음이 터졌다. 치킨 냄새도 향수처럼 뒤에 남아 지나간 이, 냄새의 주인을 뒤돌아보게 하는 건가.


7. 기숙사 건조기는 한 번 돌릴 때마다 1200원인 주제에 성능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지. 오늘은 빨래양이 많았는지 건조가 끝나고도 축축해서 한번 더 돌렸다. 빨래를 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짜증 나게 하길래 속상했다. "짜증 내지 마. 한 번 더 돌리면 되지" 나에게 말해줬다. 룸메가 들어오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 했는데 건조기를 두 번 돌리게 되면서 잠 안 자고 글을 끄적일 시간만 늘었다. 그 덕에 그동안 미뤄놨던 평소 잡생각을 적은 메모장 털이를 하게 됐으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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