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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an 22. 2024

히키코모리 탈출 일지

주말

금요일엔 저번에 못 본 연극 나머지 조각을 모으러 갔었다. 그리고 1회 차 때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었어서 원작 소설집을 읽어봤던 게 2회 차에 더 재밌게 관람하는데 도움이 됐다. 원작의 메시지를 연극의 방식으로 어떻게 전달하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까지는 영화나, 시, 미술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를 최대한 배제하고 선입견 없이 오롯이 작품 자체에 대한 내 감상을 가지는 걸 선호했다. 근데 그것도 참 오만한 생각이기도 했다 싶다. 그러려면 평소 식견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이니. 


토요일엔 자조모임 내의 동아리 활동이 있었다. 중국 유학 경험이 있는 청년의 추천으로 중국식 찜닭 요리인 황먼지를 먹으러 건대로 모였다. 생각보다 걱정했던 이국적인 느낌이 없어서 굉장히 편안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오후에는 다른 청년분들이 합류를 하게 돼서 파하려던 분위기에서 저녁까지 놀게 되었다. 나는 사실 누나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하나 사서 누나집으로 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셨다가 건대로 합류 중이라는 청년분이 계셨다. 그 마음을 느끼고도 먼저 홀랑 가버리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또 한 분은 특별히 애착이 있는 청년분인데 평소에 엇갈리는 느낌이라 오신다니까 반가워서 그냥 더 놀기로 했다. 


합류 멤버들과 2차전으로 떡볶이, 카페를 달렸다. 카페에서 앞으로의 모임 내 활동 콘텐츠 이야기를 하다가 스키장 가고 싶다고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너무 반가웠다. 내 기억이 맞으면 내가 인생 사상 두 번째로 '행복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던 순간이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타고 성공적으로 활강할 때였다. 나는 자전거만 타도 몸으로 바람을 느낄 때 '자유롭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스노보드는 거기에다가 맛있는 겨울 공기와 하얀 풍경, 난이도의 압박 재미까지 더해진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다 모여있어서 그런가 보다. 몸 쓰는 거랑 예쁘고 맛있는 거.


저녁으로 도시맥주에서 치킨을 먹었다. 요르단과의 축구 경기를 보기를 원하는 청년분들이 계셨는데 장소 물색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냥 식사만 했다. 그리고 저녁때 항상 딥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왜일까. 헤어지기 전 시간이기 때문일까. 매장 조명의 영향인가 뭐가 됐든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특별하다.


저녁 먹고 나와서 모임이 파하고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한 청년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타서 역방향으로 좀 가버렸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학습을 못했네. 


헤어진 후 한 시간 좀 넘게 걸려 누나 집에 도착했다. 누나도 요즘 힘들었어서 그런지 내가 오자 말을 많이 했다. 샤워하려고 팬티 바람인 상태로 싱크대에 기대서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모임에 가면 항상 내가 말이 많아서 요즘은 좀 듣고 싶었는데 말 많은 사람이 여기 있네. 역시 피는 못 속인다. 덕분에 나는 실컷 들을 수 있었고, 누나도 스트레스를 잘 해소할 수 있었다. 


내가 별 거 하는 것도 아닌데도 와주면 누나도 매형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니 출구 없는 육아가 힘들긴 하구나 싶다. 엄마가 힘들면 남편도 힘들고 내가 가면 누나가 편해져서 매형도 편해지는 구조인 것 같다. 아니면 패색이 짙은 전장에 지원군이 합류한 느낌을 받는 걸까?


항상 누나 집에 가면 대접을 받아서 내가 늘 감사한데 서로서로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다. 좀 더 자주 가긴 해야겠다. 마음이 건강해진 내가 가족에게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게 기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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